2010년 5월 9일 일요일

가재미

문태준 시인의 시 "가재미" 전문을 적어 본다.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모습을 고도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시다.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
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
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
던 그 겨울 어늘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
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
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신 내 몸위에 그녀가 가
만히 적셔준다

<가재미> 문학과 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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