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1일 월요일

청소 불공

법정 스님은 '청소 불공'을 권장하셨다고 한다. "구석구석 쓸고 닦아 내는 동안 바깥에 쌓인 티끌과 먼지만 닦이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도 맑고 투명하게 닦이기 때문이다."

책상 주위를 정리정돈하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치울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내 주위는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신지 않는 구두, 사용하지 않는 그릇 등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이들을 오매불망에서 자유롭게 해주어야겠다. 그리고 내 마음도 함께 비워야겠다.

2010년 5월 30일 일요일

생각의 탄생

생리학 교수인 남편이 역사학 교수인 부인과 함께 1999년에 발표한 <생각의 탄생 Sparks of Genius>이란 책에서 Root-Bernstein 부부는 노벨상 수상자, 발명가, 과학자, 예술가 등 천재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분석해 13개의 생각을 위한 도구를 찾아낸다.

이 13가지 도구는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 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다. 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관찰이라고 한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의문을 제기하며 바라보는 능동적 행위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수없이 하늘을 쳐다 보지만 하늘이 왜 파란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19세기 물리학자 존 틴들이 최초로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이 의문에서 출발한 그는 결국 하늘의 색깔이 대기 중의 먼지나 다른 입자와 부딪쳐 산란하는 햇빛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관찰은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가능한 행위다. 하지만 요즘처럼 스케쥴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아이들이 관찰할 시간이 있을까? 빈둥대는 걸 보지 못하는 부모들, 그게 그냥 빈둥대는 게 아니라 뭔가 아이들 머리 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 그냥 놔둘 텐데. 창의력 개발을 위해 학원 한 군데 더 보내는 것보다 더 좋다는 걸 알 텐데 말이다.

2010년 5월 29일 토요일

팬티와 빤스

손현숙 시인의 재미난 시 하나를 읽었다. 제목은 <팬티와 빤스>.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샅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빤쓰'는 영어 pants가 일본어를 거쳐서 한국어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영어의 pants는 원래 속옷이 아니라 겉에 입는 바지다. '팬티'는 영어의 panties에서 온 말로 여성의 속옷 하의를 가리킨다. 영어에서 남자 속옷 하의는 일반적 용어로 underwear, 구체적으로는 shorts 혹은 boxer shorts이다. 하지만 '팬티'는 콩글리쉬가 되어 남녀 공용으로 사용된다. 외래어가 이식되면서 그 의미가 변형되는 예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엔 '빤쓰'를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제는 '팬티'가 압도적이다. 일본어 정화 운동에 의한 것인지, 영어의 힘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영어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최근 몇 십년 간 '팬티'가 '빤쓰'를 밀어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무튼 여기서 '빤츠'와 '팬티'가 갖는 connotation(직접적인 의미 이상의 함축적 의미)은 확연하다. 후즐근하고, 아줌마가 입을 것같은 빤쓰와 신델렐라 공주가 입을 것 같은 화려한 팬티. 인간은 '빤쓰'와 '팬티'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심리적 양면성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그냥 그대로 자기이고 싶으면서도 남을 의식해 또 다른 나를 보이고 싶은 마음, 후자인 경우엔 당연히 좀 더 화려하고, 세련되고, 멋있고, 아름다운 나가 될 테다. 아마도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봉은사 콘서트

유서 깊은 사찰 중 하나인 강남의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하였고 연산군 시대 이래로 1941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중창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 절은 가까이에 있는 선릉과 정릉을 수호하는 원찰(願刹)의 기능을 하였고,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같은 큰 스님들이 이 절 앞뜰에서 치뤄진 승과를 통해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 유서 깊은 절에서 내일 콘서트가 열린다. <강의 노래를 들어라>를 타이틀로 내건 이 콘서트는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노래로 모아 내고자 한다. 강을 파괴하는 것은 생명의 흐름을 파괴하는 것과 같고 그것은 결국 큰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인간의 과욕이 부르는 수 많은 인재를 목격하면서도 왜 우리는 멈추지 않고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위해 치닫고 있는지...

절에서 열리는 이 콘서트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가 될 터이지만, 진작에 와서 들어야 할 사람들은 이 희망의 노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2010년 5월 27일 목요일

색깔

박종국 시인의 <색깔은 말이다>라는 시를 읽다.

색깔 만드는 게 직업인 나는
먹고 사는 일도 색깔에 기댑니다.
나는 색깔을 만들고
색깔은 내가 사는 길 내어줍니다
만들 때마다 제 마음 들려줍니다
검정색 만들 때는
모든 파장 받아들이는 大德
어머니 마음 들려주고
흰색은 모든 파장 반사하는
어린아이 눈동자 같은 마음 들려주고
파랑은 꿈속 이야기
노랑은 나만의 행복한 마음
보라색은 고통을 견디는 방법 들려줍니다
색깔 만들 때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언을 듣습니다
내가 듣는 자연의 말입니다
색깔 속에는 내 생이 들어 있어
사람보다 사람같이 말하는
색깔들의 말을 듣습니다

시인은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시학 이론이 있어 왔지만 여기서 박종국 시인은 색깔마저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색깔에 둘려 싸인 세상, 그 색깔을 그래서 감지하지 못하며 사는데, 시인은 색깔들이 말하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나도 이제 색깔들의 말에 귀기울여 봐야겠다.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바라보는 기쁨

법정 스님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책 <아름다운 마무리>의 '바라보는 기쁨'이란 글에서 인간 관계를 아름답고 향기나게 꾸려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너무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실체)을 놓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늘 한데 어울려 치대다 보면 범속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걸핏하면 전화를 걸고 자주 함께 어울리게 되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고일 틈이 없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더라도 만나면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고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을 경우, 매일 만나는 부부 관계는 어떻게 그리움과 아쉬움을 잃지 않고 그 신선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때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을 살 때, 그리고 그 삶을 계속해서 가꾸어갈 때, 상대방의 향기를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보리밭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그 옛날 즐겨 부르던 노래, 그 가사가 새삼스럽게 아름답게 귓가를 맴돈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누에다리

서초구 반포로 상공에 걸려 있는 누에다리(영어로는 Silk Bridge)는 몽마르뜨 공원과 서리풀공원을 이어 준다. 작년 11월 19일에 개통된 이 다리는 이 일대가 조선시대에 양잠기관인 "잠실도회"가 있었던 터라는 사실에 착안해 누에 형태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누에는 풍요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 다리 제작하는 데에 42억 원이 들었다니 정말 서초구가 풍요로운 구이긴 한 모양이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무교와 무질서

최준식 교수의 <한국인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는 한국의 문화적 현상을 한국에 뿌리를 두거나 뿌리를 내린 여러 종교의 영향에서 파악한다. 1권에서는 무교, 유교, 불교를 다루고 있는데 무교 부분에서 흥미로운 해석이 나온다. 외국인들이 자주 지적하는 한국인의 무질서의식, 예를 들어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것, 혹은 술을 마시면 곤드레만드레가 될 정도로 마시는 습성 ("곤드레 만드레"라는 대중가요가 있을 정도로!), 이런 문화는 무교의 전통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자유분방한 무질서 성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이 한국인의 원시적 종교인 무교에서도 관찰된다고 한다. 굿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형식을 갖춘 종교의식이라기 보다는 일상적 삶을 옮겨놓은 듯한 무질서의 향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질서의 절정은 "질서 이전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카오스적인 망아경"이라고 하면서 술에 취해 망아경에 이르는 술문화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밖에도 무교적 영향이 우리 문화속에서 발현되는 양상으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 건출물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 자연을 건축물 안으로 끌여드리는 양식, 무작위의 미를 자랑하는 조선의 막사발, 음악 분야에서는 시나위의 즉흥성에서 나타나는 부조화의 조화 (한국적 재즈라고), 산조음악의 즉흥적 변주 등등이 언급된다.

자기 문화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 글로벌 시대에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swamped

'몹시 바쁘다'는 영어로 swamped로 표현할 수 있다. '늪'인 swamp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니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의미일게다.

(미드 Gilmore Girls에 나오는) 대화문:

Emily: What are you doing here? I thought you were both swamped with work.
니네 둘 여기서 뭐해? 둘 다 바쁜 줄 알았더니.
Lorelai: We're playing hooky.
우리 땡땡이 치고 있어요.

'땡땡이 친다'는 play hooky도 기억해 두어야겠다.

2010년 5월 21일 금요일

에너지 전환

충남 홍성에 <에너지 전환>이라는 풀뿌리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은 에너지에 집중한 환경 단체인데 처음엔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가 에너지 실천을 위해 홍성 시골 마을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국내 최초의 패시브 하우스 Passive House를 자그마하게 지어 놓았다. 패시브 하우스는 이필렬 교수가 독일의 Passivhaus를 국내에 처음 소개함으로써 알려졌고 현재 몇 개의 집들이 지어져 있다고 한다.
그 외에 태양열 오븐, 자전거를 이용한 전력 생산 등을 시도하고 있다.

단열을 이용한 패시브 하우스는 에너지 소비가 보통 집의 10분의 1이라고 한다. 난방비와 여름의 에어컨 비용이 만만찮은데 이 건축 기법을 이용하면 정말 에너지가 많이 절약된다. 그곳에 지어 놓은 7평짜리 시범적 파시브 하우스는 평당 200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그보다 좀 더 싸게 지을 수도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패시브 하우스를 지으면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 그리고 보조금은 절약된 난방비로 몇 십년 간 갚아나가는 식으로 해서 되돌려 받는다고 한다. 우리 도시의 다세대 주택이나 일반 주택을 이런 환경친화적 건축방식으로 개조하거나 새로 짓게 만들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너지도 절약되고,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나 좀 더 마을 기분이 나는 인간친화적 도시가 되지 않을까.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잘 된 번역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의 예를 보자.

He is acting like a child. 라는 문장을 번역하라고 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는 아이처럼 행동한다"라고 번역할 지 모른다 (적어도 난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이 문장을 좀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하면 "애들도 아니고 말이야."가 될 수 있다. <번역의 탄생>의 저자 이희재 씨의 번역이 그렇다. 그가 번역한 예를 보자면,

People would treat you with respect.는 "사람들이 너한테 함부로 굴지 않을 거야."로
Please memorize this dialogue before you come back.은 "이 대화는 다 외워서 오세요."로
Most classical music sends me to sleep.는 "클래식 음악치고 졸리지 않은 것이 드물다."로
Europe was alarmed.는 "유럽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번역해 놓았다.

번역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국 문학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2010년 5월 19일 수요일

닮은 부자

'아비를 빼어 닮은 아들'이란 의미의 영어 표현에 chip off the old block가 있다.
The son is just like his father.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His son is a chip off the old block.라고도 할 수 있다.

(from American English Expression)

우리 아들, 제 아빠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돈과 물

영어에서 '돈을 물 쓰듯 하다 spend money like water' 와 비슷한 표현들:

spend money like drunken sailors
spend money like its going out of fashion
spend money like there's no tomorrow
spend money likt it grows on trees
scatter money around like autumn leaves
have no sense of money

술에 취한 선원같이,
돈의 유행이 지나버리기라도 하듯,
오늘만 살고 그만 둘 사람같이,
마치 돈이 열리는 나무가 있듯,
마치 가을 낙엽같이 돈을 뿌리고,
돈에 대한 감각이 없다

물도 요즘은 돈을 내고 마시고 미래엔 물전쟁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물부족 국가라고 4대강 삽질을 열심히 해대는 요즘엔 '돈을 물처럼 쓴다'는 말은 '돈을 아껴 쓴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2010년 5월 17일 월요일

율무

율무는 영어로 Job's tears라고 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 Job은 자신에 닥친 온갖 불행을 믿음으로 견뎌내는 인물로서, 욥이 흘렸던 눈물이 율무 열매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율무도 아주 오래동안 지구상에 존재한 곡식인 모양이다.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오이

오이와 관련된 영어 표현에 '오이처럼 침착하다 as cool as a cucumber'란 말이 있다. 차갑다는 의미의 cool이 사용되어 냉정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오이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속의 온도가 겉온도보다 최대 20도나 더 차갑다고 한다.

오이가 이런 특성이 있는 줄 몰랐다. 화가 끓더라도 오이처럼 침착하고, 냉정하고, 쿨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숨겨진 뇌'

"히드 브레인 Hidden Brain"이란 책 서평을 읽었다. '숨겨진 뇌'란 우리가 깨닫지 못한 새 우리를 조종하는 무의식적 편향이라고 한다. 그 편향은 집단의 논리에 순응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이와 반대로 소규모 집단의 심리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집단행동을 따라가는 것이 전자라면 자살테러범, 이상주의적 선교사, 용감한 병사는 종교나 애국심, 봉사와 같은 거창한 가치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의미를 부여받고 싶은 욕구가 행동의 동기라고 한다. 이같은 무의식적 편향은 위험뿐 아니라 도덕적 판단, 주식 투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쉽게 발음되는 이름을 가진 회사의 주가가 더 많이 오른다고.

이 같은 무의식적 편향이 만들어지는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집단행동을 따르는 건 진화과정에서 축적된 심리유형이라 암시되고 있긴 한데 그외 다른 편향들도 그런가? 그리고 그것이 개개인을 초월하여 인간 일반에 나타나는 경향이라면 사실 그것 역시 결국 '숨겨진 뇌'가 아니라 '밝혀진 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시 한편

정호승 시인의 시 "휴대폰의 죽음"의 전문을 실어 본다.

휴대폰의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영등포구청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전동차가 역 구내로 막 들어오는 순간
휴대폰 하나가 갑자기 선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전동차를 기다리며 바로 내 앞에서
젊은 여자와 통화하던 바로 그 휴대폰이었다
승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전동차는 급정거했으나 그대로 휴대폰 위로 달려나갔다
한동안 전동차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역무원들이 황급히 달려오고
휴대폰의 시체는 들것에 실려나갔다
한없이 비루해지면 누구의 얼굴이 보이는 것일까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지 못한 것일까
선로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으나
전동차는 다시 승객들을 태우고 비틀비틀 떠나갔다
다시 전원의 붉은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휴대폰은 자살한 이들과 함께
천국의 저녁식탁 위에 놓여 있다

절망과 죽음 끝에 도착한 천국의 저녁식탁이 그나마 위로가 되어준다.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느리게 사는 일곱가지 습관

여성환경연대에서 '현대인을 위한 대안생활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느리게 사는 일곱가지 습관"을 소개한다.
1.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닌다
2.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속도를 느낀다
3. 공장제품이 아닌 손으로 만든 것을 쓴다
4. 일주일에 한번 전기를 끄고 촛불을 켠다
5. 손수 만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6.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7. 일회용 컵 대신 개인컵을 쓴다

걸어다니는 걸 좋아해서 가능하면 걸어다니려 한다. 서울 곳곳을 걸어다니며 탐방하는 것이 소원인데 아직 시간이 없어 실행을 못하고 있다. 언젠가 함께 걸을 수 있는 소모임을 꾸릴 수 있기를 꿈꾼다.
올해 몇 가족이 모여 가족 텃밭을 일구고 있다. 이미 감자, 상추, 열매 채소도 심고 이제 물주고 잡초 뽑으면서 열심히 가꾸면 된다.
음식을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작년 겨울 내 생애 처음으로 김장도 담았다. 그래서 올해 내내 풍성하고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집 가까이 재래시장이 있어 가끔 들른다. 그래도 대형마트를 무시할 순 없다.
일회용 컵은 거의 안쓰고 컵을 쓴다. 공장제품 아닌 것, 손으로 만든 건, 초등 아들이 최근에 떠 준 수세미, 아주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촛불 켜기는 여전히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만 하면 꽤 느리게 사는 편이 아닐까?

2010년 5월 12일 수요일

도마복음

한겨레 신문 오늘 날짜에 금기없는 '기독교 토론'에 관한 기사가 났다. 도올 김용옥,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재캐나다 신학자 오강남교수,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 정강길 연구실장이 모였다.

토론 내용 중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도올과 오강남 씨가 연구한 <도마복음>에 관한 것이었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 사막 절벽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문서이다. 도올은 이 문서의 내용에서 불교에서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을 밝히고 있고 오 교수 역시 이 문서가 선불교의 공안(화두)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약성서의 정전인 공관복음은 예수를 따르라는 교훈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도마복음>에서는 '깨쳐라, 깨달아라, 네 속의 하나님을 찾아라. 네 속의 하나님이 바로 너다'라는 새로운 예수의 가르침을 보여준다고 한다.

<도마복음>의 이 같은 메시지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도울이 펴낸 <도마복음 한글역주>(3권)과 오 교수의 <또다른 예수>를 읽어보고 싶다.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부보상 負褓商

우리가 역사책에서 알고 있는 '보부상'이란 말이 사실은 일제가 '부보상'을 왜곡하여 고친 말이라고 한다. 등짐장수(負商)와 봇짐장수(褓商)의 합성어인 이 말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상업을 육성하기 위해 친히 하사한 고유명사이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조 유통경제의 진귀한 보배로서 건재했던 부보상을 찌그려 트리고 보부상으로 변조하여 천덕꾸러기로 전락시켜 놓았다고 한다.

부보상은 전통적으로 사람다운 덕망을 갖추도록 노력했고 4대강령을 세워 이를 지키려 했다고 한다. 물망언(勿忘言), 물패행(勿悖行), 물음란(勿淫亂),물도적(勿盜賊)이 그것이다. 즉 말령된 말을 하지 말고, 패륜적인 행동을 하지 말며, 음란한 짓을 하지 말고, 도덕질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전통행상인 부보상은 인덕으로써 인륜도리를 숭상하였고 진충보국하는 국가관이 투철한 가운데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심역할을 수행한 독특한 한국적 사회계층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장돌뱅이'란 말은 부보상을 일컫는 다른 말이었다고 한다. 시장의 울타리 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로 들리는 '장돌뱅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니 이 말이 다르게 들린다.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실용지능

한겨레 신문의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칼럼에서 실용지능에 대해 새롭게 배웠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실용지능 (Practical Intelligence)이란 - 심리학자 스턴버그에 따르면 - '뭔가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언제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아는 것을 포함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 지능은 이해하고 아는 '지적 능력'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지 아는 '방법'에 관한 능력인 셈이다. 지능이 선천적이라면 실용지능은 후천적이고 따라서 후자는 어려서의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아이가 자기보다 높거나 힘이 센 사람 (부모, 선생님, 주위 어른, 병원의 의사 등등)과 대면해서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필자는 '실용지능'이 가정뿐 아니라 사회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면서 글로벌 시대에 '자기의사 표현'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실용지능'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유교문화의 전통이 여전히 뿌리깊은 한국 사회의 위계적 인간관계는 이런 '실용지능'을 키워주기에 적절한 토양이 되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진지하게 경청한다면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지적 능력 또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말대로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들과의 경쟁 속에서 지적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펼칠 장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사교육 없이도 할 수 있는, 미래 세대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

가재미

문태준 시인의 시 "가재미" 전문을 적어 본다.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모습을 고도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시다.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
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
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
던 그 겨울 어늘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
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
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신 내 몸위에 그녀가 가
만히 적셔준다

<가재미> 문학과 지성사, 2006년

2010년 5월 8일 토요일

오역

<일용할 양식> 오늘의 말씀에서 셰익스피어의 말이 인용되었는데 한국어 번역에 오류가 있어서 고쳐본다.

"They truly love who show their love."가 "사람들은 사랑을 보여주는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로 번역되었다.
제대로 번역하면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 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언급한 "사랑은 없다, 다만 사랑의 표시만 있을 뿐이다"라고 한 말과 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10년 5월 7일 금요일

번역 연습

전업 번역가 이종인 씨가 낸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책에는 번역 실전을 위한 연습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스스로 번역해 보고, 저자가 번역한 글과 비교해 보면 자신의 번역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연습문제 1>의 앞 부분 두 단락을 번역해 보았다.
여기에 원문, 내 번역, 그리고 저자의 번역을 차례로 실어 본다.

The director of the Zoological Gardens had shown himself to be an upstart. He regarded his animals simply as stepping stones on the road of his own career. He was indifferent to the educational importance of his establishment.
The zoo was in a provincial town, and it was short of some of the most important animals, among them the elephant. Three thousand rabbits were a poor substitute for the noble giant. However, as our country developed, the gaps were being filled in a well-planned manner. On the occasion of the anniversary of the liberation, on 22nd July, the zoo was notified that it had at long last been allocated an elephant. All the staff who were devoted to their work, rejoiced at the news. All the greater was their surprise when they learned that the director had sent a letter to Warsaw, renouncing the allocation and putting forward a plan for obtaining an elephant out of rubber, of the correct size, fill it with air and place it behind railings.

번역1)
동물원 원장은 언제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났다고 생각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단지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는 동물원이 갖는 교육적 기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동물원은 조그마한 도시에 있었고 동물원의 대표적인 동물들, 예를 들어 코끼리가 없었다. 삼천 마리의 토끼로써는 그 고상한 거구의 동물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라가 점점 발전하면서 낙후된 것들이 계획에 맞춰 개선되기 시작했다. 독립 기념일인 7월 22일을 기해서 동물원에 마침내 코끼리 한 마리가 배정될 것이라는 통보가 왔다. 자신들의 일에 열심이었던 모든 동물원 직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이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동물원 원장이 바르샤바에 편지를 써서 코끼리의 배당을 취소하고 좀 더 경제적인 방법으로 코끼리를 얻을 수 있다는 계획을 전달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원래 크기대로 고무를 재료로 코끼리를 만들어서 공기를 채워 울타리 뒤에 세워 놓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번역2)
그 동물원의 원장은 벼락 출세자다운 행동을 보였다. 그는 동물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여겼을 뿐, 동물원의 교육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 동물원은 지방 도시에 있었고 일부 중요한 동물들을 갖추어 놓지 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코끼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토끼는 3천 마리가 있어봐야 이 고상한 거물을 당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부족한 동물들은 아주 잘 계획된 방식으로 보충되었다. 해방 기념일인 7월 22일에 맞추어 그 동물원에 통지가 내려왔는데 마침내 코끼리 한 마리가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던 직원들은 그 소식에 모두 기뻐했다. 그러나 원장이 바르샤바에 편지를 보내어 그 배정을 취소토록 하고 보다 경제적인 방식으로 코끼리를 들여놓는 계획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서 직원들은 더욱 더 놀랐다.

딸 아이(만 13세)에게 두 번역을 비교해 보라고 하니 1)은 좀 딱딱하다고 직역한 느낌이고 2)이 좀 더 유연하고 잘 한 것 같다는 평이 나왔다. 제대로 평가를 한 셈이다. 물론 번역2)의 마지막 문장이 원문내용을 부분적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을 빼면. 번역1)에선 upstart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점도 눈에 뜨인다. upstart는 '벼락 출세자'로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크게 성공한 경우를 말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상승욕구만을 채우려는, 좀 거만하고, 돼먹지 못한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을 무시하고 동물을 자신이 출세하는 데 있어서 수단정도로 생각한다는 것. 따라서 번역2)가 적절하다.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시 한편

시인이면서 문학비평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석주 시인의 시 <돌과 박새> 전문을 인용해본다.

아궁이 잿속 불구덩에 묻은 감자만 하랴. 네 속은 내가 안다, 참 시커멓게도 탔구나. 난 쓸데없이 많은 책을 읽었어. 덧없는 것들과 관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산비알같은 명예를 잃었어. 사랑하는 것들은 참 멀리 있구나. 무슨 염치로 당신의 이쁜 엉덩이를 보겠어. 가슴에 벙어리 종달새 암수 한 쌍, 첫 수확한 토종꿀같이 오는 황혼, 하늘에 진흙으로 구운 구름들, 거리엔 남의 애를 밴 여자들이 걷는다. 난 무분별과 어리석음으로 청춘을 낭비했어. 박새들아, 내 빚을 탕감해 줘. 굳고 정한 여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으니, 때늦은 후회로 자주 정수리는 과열되고 무릎 몇 깨쯤 잃어버려도 좋아. 헌 가슴팍에 둥지를 틀다가 소스라쳐 날아가는 가을 박새들아, 잘못 했어, 잘못 했어. 돌아, 센 불에 졸아든 한약 같은 네 입김을 내 귓바퀴에 한 번만 부어줄래? 돌아, 검붉은 피라도 솟구치게 내 머릴 한 번 찍어줄래?

'산비알'은 '산비탈'의 충청도 방언이라고 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다. '산비탈 같은 명예'라...

쓸데없이 많은 책을 읽고, 덧없는 것들과 관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은 참 멀리 있고...

언젠가 책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엮어낸 책에서 장석주 씨가 머무는 시골집, 그의 서재에서 책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았었다. 한적한 시골에서 책과 벗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립된 삶을 자처한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시에선 책 속에 묻혀, 정신세계를 갈구하며 사는 삶이 포기해야 할 많은 것들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련해진다.

2010년 5월 5일 수요일

베리 에이블 키드

<3세부터 큰인물로 키우는 글로벌 홈스쿨링>이란 책에서 저자 심미혜 박사는 21세기에 필요한 교육은 베리 에이블 키드 very able kid를 키워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말로 딱히 적절한 번역이 없어서인지 영어를 그대로 발음해 쓰고 있다.

저자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3가지 조건은 지적 능력을 키워주는 것, 여러가지 기술을 길러주는 것, 그리고 인성과 도덕성의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지적인 능력'만을 강조하는 절름발이식 교육이라고 비판한다. 이 세 가지는 각각 개별적으로 교육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지적능력을 키우는 교육 자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면서 선행학습, 이해와 암기, 시험보기 식으로 이어지는 교육패턴은 21세기가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21세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가보다는, 그런 지식들을 활용해서 주어진 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창조적으로 대응하며 다른 사람들과 잘 협동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위의 책, 10쪽)

저자는 이책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제안하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부모의 역할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하려면...

2010년 5월 4일 화요일

'문제'보다 '존재'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요즘은 학부모 코칭과 관련된 책도 칼럼도 종종 눈에 띄인다. 한겨레 신문의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코너는 내가 즐겨 읽고, 항상 뭔가를 배우는 좋은 칼럼이다. 오늘도 참으로 귀중한 인식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아이가 방을 치우지 않을 때, 해야 할 숙제를 미룰 때, 밤늦게까지 깨어 있고 늦잠 자는 불규칙한 생활을 할 때, 이런 문제점들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거슬릴 때, 부모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그 문제를 존재로 확대하는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문제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남관희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문제 덩어리가 아니다. 아이는 조그만 문제점을 지닌 어마어마하게 큰 존재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관계가 멀어지지만, 존재에 초점을 맞추면 친해질 수 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아이를 째려보게 되지만, 존재에 초점을 맞추면 아이를 놔둘 수 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비난하게 되지만, 존재에 초점을 맞추면 인정할 수 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조급해지지만, 존재에 초점을 맞추면 느긋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문제 행동은 있지만, 문제인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깨달음을 주는 발언이다. 정말 소중한 아이의 존재를 왜 문제덩어리로 보게 되는지... 이제 '문제'와 '존재'를 확연하게 구분해야겠다.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좌우명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원제 The Making of a Radical)에서 저자가 좌우명으로 삼은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급변하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좌우명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좌우명 (座右銘)이란 말 자체는 '항상 옆에 두고 마음에 새기는 문구나 글'이라는 뜻이다. 유목민의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음 속에 새겨둔다면 힘이 되지 않을까.

니어링의 좌우명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 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적인 인격체를 완성할 것" (스콧 니어링 <자서전> 38쪽)

2010년 5월 2일 일요일

한 마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의 한 마디가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2010년 5월 1일 토요일

공포증

여러가지 공포증은 영어에서 접미사 -phobia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대인공포증 anthro(po)phobia
고소공포증 acrophobia
광장공포증 agoraphobia
이성異性공포증 heterophobia
폐소(밀실)공포증 claustrophobia
동물공포증 zoophobia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한동안 보컬 학원에 다닌 딸 아이 왈 자기는 '고음공포증'이 있다고.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지? highpitchphobia? screechophob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