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삼대

염상섭의 <삼대> 중
'봉욕'을 소제목으로 한 단원

주부는 청년들의 말에 노하면서도 취한 사람으로 돌리고 뜯어말려 돌려보내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병화는 그렇지 못하였다.
"더러운 것들이라? 고발을 한다? 더러운 걸 무얼 봤니? 마뜩지 않은 놈들! 너희들은 뭐냐? 경찰의 개냐?"
경애를 떼어 놓고 몹시 노려보던 병화는 단번에 달려들려 하였다. 저편도 물론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애는 병화를 마주 얼싸안아 버리고 주부는 두 청년을 두 활개를 벌리고 가로막았다. 상훈이는 그대로 앉아서 물계만 본다. 술이 금시로 번쩍 깨는 것 같았다.

유영난 씨의 영역본은 이렇게 옮겨 놓는다

Humiliation

Though the proprietor was furious over the young men's remarks, she was willing to chalk up their offensive behavior to liquor, break up the fight, and shoo them out. But Byeong-hwa wasn't able to shrug it off. Eyes bulging with anger, he shouted, "Filthy pieces of shit? Report us to the police? What filth have you seen here? Bastards! Are you police rats?"
Byeong-hwa had pulled himself away from Gyeong-ae and was ready to lunge at them, and his opponents, undoubtedly, were spurred. Gyeong-ae threw herself between them, and held Byeong-hwa back, while the proprietor did her best to block the two young men. Sang-hun just looked on, suddenly feeling sober.

1930년대에 쓰인 소설에서 이제는 낯선 단어들이 눈에 띈다. '욕된 일을 당하다'는 의미의 '봉욕'과 '어떤 일의 처지나 속내'라는 의미의 '물계'가 각각 'humiliation,' 'just look on'('물계만 본다')로 번역되었다.
humiliation을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창피 주기, 욕보이기, 굴욕, 굴복, 창피, 면목 없음'으로 번역되어 있다. '굴욕'보다 '봉욕'이 왠지 더 적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봉욕'이란 말은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봉욕'이란 말을 한영 사전에서 찾으면 나온다. 영어로 'suffer an insult,' 'meet with shame (humiliation),' 'be put to shame'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영사전에는 나와 있는 어휘가 왜 영한사전에서 사용되지 않았을까? 영한사전을 만든 영어학자들이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봉욕'이 더 이상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서?

아무튼 잊혀진 옛 어휘들을 잘 찾아 내서 사용하면 현대의 한국어 어휘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언어는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하게 마련이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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