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미묘한 차이

영어 접속사 because와 since는 둘 다 이유를 설명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후자보다 인과관계를 강하게 나타낸다. 그래서 직접적이며, 논리적인 이유를 말할 땐 because를 많이 쓰고, 간접적인 이유나 어떤 상황에 대한 배경을 말할 때는 since를 사용한다.

다음 예문들을 비교해 보자.

My cell phone broke because I dropped it. (o)
Since I dropped my cell phone, it broke. (x)

Since I don't have classes tomorrow, I'm going to sleep late. (o)
I'm going to sleep late tomorrow because I don't have classes. (어색한 표현. 말하는 사람이 '너 도대체 왜 늦잠자려고 하느냐'고 따질 것 같아서 미리 변명하는 느낌을 준다)

Since it's raining, let's take a cab. (o)
Let's take a cab because it's raining. (x)

Since you're here, you might as well stay for dinner. (o)
Because you're here, you might as well stay for dinner. (x)

(From Gary Rector's English Tips)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참나

성철 스님의 법어였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운문 선사의 <운문록>에도 나온다고 한다.
"수행자들이여 망상을 버려라.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수행자는 수행자이며 속인은 속인이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물의 본질을 덮고 있는 겉모습만 볼 때가 많다.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참나라고 한다. 참나는 내 경험보다 크고 내 욕망보다 크다. 참나를 찾은 사람을 여래(如來)라고 한다.

"여래는 타타가타 Tathagata라고 하는 타타타에서 파생했다. 산스크리트어인 타타타는 여여如如 이다. 여여는 '어찌하면 어떠하냐'는 뜻이다.김국환이 부른 <타타타>의 노래 가사에도 나왔듯, 여래는 비가 오면 비에 젖어 살고 바람 불면 바람에 젖어 산다. (...) 여래가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 같으나, 그보다 여래는 본디의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이다. 본디 불은 뜨겁고 물은 차갑다. 너도 본래 그렇고 나도 본래 그렇다." (<리더십, 불변의 법칙> 118쪽)

'여래'를 한영사전에서 찾으면 Buddha로 나온다. 그러니까 부처는 참나를 찾은 사람인 셈이다. 참나를 찾은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본질 그 모습대로 보이는 것이다. '참나'라는 말이 참 좋게 들린다.

2010년 4월 28일 수요일

자리이타 (自利利他)

<화엄경>에 나온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 남에게도 이로운 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달라이 라마는 자리이타를 이렇게 설명한다고 한다. "자리이타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 아니다. 보살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궁극적 깨달음을 성취하는 목표에 전적으로 집중한다. 그 목표를 이타적인 마음인 자비심을 키워 이룩한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최상의 길이 이타적인 사람이고, 그 행동이 자기에게 가장 큰 축복으로 돌아온다." (<리더십, 불변의 법칙>, 15쪽)

이 설명을 읽다 보면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결국은 이타적 마음을 키우는 것이고, 이 마음은 결국 해탈을 통해 자신을 승화시킨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자신을 위하는 것과 남을 위하는 것이 여기서는 선후의 관계라기 보다는 동시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불교에서의 자비는 기독교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고, 해탈과 예수를 닮는 것 또한 같은 경지가 아닐까 싶다. 그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 것 또한.

삶의 목표가 나 자신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나 자신을 넘어서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을 때, 그것이 결국은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마음에 와 닿는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경영 (經營)

<리더십, 불변의 법칙>에서 저자 이동연은 경영(經營)이란 말이 본래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본디 경영經營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경 經은 '진리', 영營은 '만들다, 짓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경영은 진리를 찾아 깨닫고 깨달은 바를 영위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일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자신을 더욱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19쪽)

목사인 저자가 부처의 리더십에서 인류 최고의 리더 경영의 방법을 찾아내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위의 경우처럼 여러 한자어가 새롭게 읽히는 느낌도 참신하다. 경영학의 경영, 회사를 경영하다, 등에서 익숙한 이 '경영'이란 말이 불교에서 진리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위해 계속 자신을 개발하는 의미로 쓰였다니, '경영'이란 말 참으로 심오한 단어가 아닌가?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여행의 진정한 기쁨

"여행의 진정한 기쁨" (How to Be Invisible)이란 글에서 <세계여행 백배 즐기기> (원제: Grounded: a Down to Earth Jorney Around the World)의 저자인 Seth Stevenson은 원제에 나와 있듯이 '보이지 않음'에서 여행의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그곳에 흡수될 때 진정한 여행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이국 문화가 나의 정체성에 스며들게 해서 현지인들과 똑같아지는 일이다."

낯선 것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변하는 것,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아닐까. 일상에서 잘 겪지 못하는 이 변화를 위해서 우린 여행을 통해 낯선 곳에 자신을 던지려는 것 아닐까.

2010년 4월 25일 일요일

인문학을 위한 찬가

인문학이 죽었다는 소리가 들린 지 오래, 이제 인문학이 회생하는 듯한 소식이 적지 않게 들린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을 비롯해 문화 센터의 인문학 강좌가 크게 인기를 끌고, 대학마다 지역과의 연계를 위한 인문학 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그리고 <뉴스 위크> 한국판 4월 28일 호에서 "인문학을 위한 찬가"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Andrew Bast라는 기자가 쓴 이 글의 원제는 The Case for a Useless Degree이다. 직역을 하자면 "쓸모없는 학위의 사례"가 될텐데 이렇게 듣기 좋게 의역을 했다.

필자는 기초적인 인문학 학위가 특정 직업에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오히려 많은 전문분야(예를 들어 법조계로부터 군대, 언론계, 학계, 교육계, 호텔, 행정, 관리, 경영 등등)를 위해서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학졸업 후 직장을 잡으면 직접 업무를 통해 거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 있고 성공적인 경력을 구축하는 데에는 업무 경험의 축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거시적 시점에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인문학적 교양과 훈련이라는 것.

미국의 아이비 리그 대학들은 인문학을 교육의 확고한 기초로 간주해 왔고 인문학 강좌를 '필수 과목'으로 개설한 대학도 많다고 한다. 인문학을 통해 배양된 비판적인 관찰, 평가, 판단 능력은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다. 한국의 초중고가 대학 입시의 준비단계로 전락한 지금, 대학에서라도 인문학적 교양과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학의 구조조정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걷다

걷기가 유행이다. 산길을 따라 걷는 하이킹족뿐 아니라 숲속을 거니는 산림욕장족, 주위 동네를 걷는 산책족,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해 강길을 따라 걷는 생태족? 등. 건강을 위해서, 자연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걷는다. 걷지 않고 살 수 없지만 걷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걷는 행위와 관련된 어휘를 보면

걷다 walk; tread; (건들거리며) swagger; (발을 끌며) shuffle; (물속을) wade
뒷걸음치다 reel; step back(ward)
산책하다 stroll; saunter; promenade
살금살금 걷다 tiptoe; walk on tiptoe
성큼성큼 걷다 stride
아장아장 걷다 waddle; (아기가) toddle
오리걸음을 걷다 squat-walk
절다, 절뚝거리다 limp; hobble; walk with a limp
종종걸음을 걷다 trot; scurry
쿵쿵거리며 걷다 tramp; stomp
터벅터벅 걷다 plod; trudge
행진하다 march; (군인들이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goose-step

jaywalker 무단횡단자
race walker 경보 선수
sleepwalker 몽유병환자
street walker 매춘부, 윤락여성
tightrope walker 줄타기꾼


(Voca 48)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삼대

염상섭의 <삼대> 중
'봉욕'을 소제목으로 한 단원

주부는 청년들의 말에 노하면서도 취한 사람으로 돌리고 뜯어말려 돌려보내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병화는 그렇지 못하였다.
"더러운 것들이라? 고발을 한다? 더러운 걸 무얼 봤니? 마뜩지 않은 놈들! 너희들은 뭐냐? 경찰의 개냐?"
경애를 떼어 놓고 몹시 노려보던 병화는 단번에 달려들려 하였다. 저편도 물론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애는 병화를 마주 얼싸안아 버리고 주부는 두 청년을 두 활개를 벌리고 가로막았다. 상훈이는 그대로 앉아서 물계만 본다. 술이 금시로 번쩍 깨는 것 같았다.

유영난 씨의 영역본은 이렇게 옮겨 놓는다

Humiliation

Though the proprietor was furious over the young men's remarks, she was willing to chalk up their offensive behavior to liquor, break up the fight, and shoo them out. But Byeong-hwa wasn't able to shrug it off. Eyes bulging with anger, he shouted, "Filthy pieces of shit? Report us to the police? What filth have you seen here? Bastards! Are you police rats?"
Byeong-hwa had pulled himself away from Gyeong-ae and was ready to lunge at them, and his opponents, undoubtedly, were spurred. Gyeong-ae threw herself between them, and held Byeong-hwa back, while the proprietor did her best to block the two young men. Sang-hun just looked on, suddenly feeling sober.

1930년대에 쓰인 소설에서 이제는 낯선 단어들이 눈에 띈다. '욕된 일을 당하다'는 의미의 '봉욕'과 '어떤 일의 처지나 속내'라는 의미의 '물계'가 각각 'humiliation,' 'just look on'('물계만 본다')로 번역되었다.
humiliation을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창피 주기, 욕보이기, 굴욕, 굴복, 창피, 면목 없음'으로 번역되어 있다. '굴욕'보다 '봉욕'이 왠지 더 적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봉욕'이란 말은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봉욕'이란 말을 한영 사전에서 찾으면 나온다. 영어로 'suffer an insult,' 'meet with shame (humiliation),' 'be put to shame'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영사전에는 나와 있는 어휘가 왜 영한사전에서 사용되지 않았을까? 영한사전을 만든 영어학자들이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봉욕'이 더 이상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서?

아무튼 잊혀진 옛 어휘들을 잘 찾아 내서 사용하면 현대의 한국어 어휘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언어는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하게 마련이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욕구와 부탁

비폭력대화의 세번째 훈련요소은 '욕구'이다. 느낌의 근원이 되는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욕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말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자신의 꿈이나 목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 웃음이나 재미, 아름다움, 운동과 휴식, 신체적 접촉 등이 그런 욕구들이다.

건전한 소통을 위해서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종종 '욕구'와 '수단/방법'을 혼동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어"라는 부모의 말에서 '공부'는 부모의 욕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수단이다. 욕구는 아이가 능력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과 친하고 싶을 때 욕구는 '친밀한 관계'이고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방법으로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는 것. 만약에 아이가 거짓말을 할 경우 그것은 자유와 놀이, 재미라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수단/방법을 선택했을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거짓말 자체에만 반응해서는 안되고 그 뒤에 숨겨진 아이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폭력대화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표현하기 보다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엄마는 너희들이 싸우는 거 싫어."는 "엄마는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내서 집안이 평화로웠으면 좋겠어."라고 또는 "저한테 욕하지 마세요!"보다 "저는 존중받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비폭력대화의 네번째 훈련 요소인 '부탁'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언어로 부탁하기',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하기', '의식적으로 부탁하기',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부탁하기'가 중요하다. 또한 부탁과 강요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부탁보다 강요하는 식이 되는 이유는 자식은 어떠해야 한다 등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쓰레기 좀 갖다 버려 줄 수 있니?"라고 부탁하기 보다 "쓰레기 좀 갖다 버려라" 식의 강요 내지 명령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느낌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에서 비폭력대화를 위해서는 네 가지 과정이 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부탁이 그것이다.

우선 첫번 째 '관찰'에서는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는 버르장머리가 없다"가 평가인 반면에 "나랑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는 관찰이 되는 것이다. 비폭력대화에서는 후자의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두번째 과정인 '느낌'에서는 느낌과 생각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난 내가 고3 엄마로 부족하다고 느껴."라고 할 때 이것은 느낌이 아니라 생각을 마치 느낌인 것인 양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느낌일 경우에는 "나는 고3 엄마 역할이 부담스러워."라고 해야 한다는 것.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게 위해서는 느낌을 나타내는 어휘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 책의 104-108쪽에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가 나열되어 있다.

이 어휘들은 욕구 충족일 때와 욕구가 충족되지 못햇을 때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최근에 내가 느낀 감정은, 초등 작은 아들이 무거운 짐을 엄마 위해 들어 줄 때 '대견하다' '든든하다' '믿음직스럽다'였다. '황홀하다', '짜릿하다', '설레다', '자유롭다' '흥겹다' 도 좀 느끼면서 살고 싶다.

반면에 부정적인 느낌 중에는 사춘기 딸 아이와의 신경전으로 '고민되다', '마음 상하다', '성나다', '서운하다', '얄밉다', '불만족스럽다', '신경 쓰이다', '실망하다', '싫다', '심란하다', '안타깝다', '어이없다', '언짢다', '우울하다', '의아하다', '조심스럽다', '짜증 나다', '착찹하다', '피곤하다', '허탈하다', 혼란스럽다', 화나다', '힘겹다', '힘들다'가 다 와 닿는다.

사춘기 딸 아이와 같이 성장하려니 성장통을 톡톡히 겪어야 하나 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좀 도움이 되려나? 머리와 가슴이, 이성과 감정이 따로 놀 때는 그게 쉽지 않다.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사랑

'사랑의 속삭임'을 영어로 sweet nothings라고 한다. 사랑의 속삭임이 물거품처럼 현실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해서 nothings로 한 점이 재미나다.

'사랑에 빠지다'가 fall in love인 건 잘 알지만 '사랑이 식다'는 표현이 fall out of love 인 걸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고.

(American English Expression, 385쪽)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선과 악

선good과 관련된 어휘들

강직한, 바른, 청렴한 upright; incorruptible
고결한, 고매한, 고상한 noble; high-minded; principled; (f) upstanding
도덕적, 윤리적 ethical; moral; scrupulous
동정적 sympathetic; compassionate
양심적 conscientious
어진, 인자한, 자애로운 (f) benevolent; benign
의로운, 정의로운 right; just; righteous
인간적, 인도적 humane
자비로운 merciful; philanthropic

악evil과 관련된 어휘들

가차없는, 무자비한 ruthless; merciless
고약한, 괴팍한 bad; foul; irritable; bad-tempered; ill-tempered
극악무도한, 잔인한, 흉악한 cruel; brutal; vicious
나쁜, 못된, 사악한 bad; evil; wicked; malicious
냉혹한 cold-blooded
매정한, 무정한, 비정한 cold; cold-hearted; callous; heartless; unfeeling
부도덕한, 비도덕적, 비윤리적 immoral; unethical; unprincipled; unscrupulous
비뚤어진, 삐딱한 perverse; (inf) warped; twisted
비양심적 unconscientious
비열한, 심술궂은, 야비한 dirty; nasty; malevolent; (inf) mean
비인간적, 비인도적 inhumane
졸렬한, 치사한, 치졸한 cheap; shameful; dishonorable

(덩어리 VOCA)

2010년 4월 18일 일요일

'책 공동체'

한겨레 신문의 칼럼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초중고교는 이미 몰락한 대학에 학생들을 보내기 위한 정거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을 하루빨리 학교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최상의 방법이다. (...) 이미 인간은 손 안의 컴퓨터와 다름없는 휴대전화로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과 접속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하루에 16시간이나 형틀에 묶어놓고 교과서적 지식을 단순하게 암기하는 학교는 이제 그만 폐기하고 새로운 학교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은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공독'(共讀)의 문화를 조성해 개인이 가진 차이를 최대한 키우는 것이다. '북 코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들고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직업, 어떤 환경에서라도 살아남는 역량을 갖추게 하지 않으면 조만간 탈학교선언은 줄을 잇게 될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글이지만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공독'의 문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기 힘들고, 반드시 학부모가 교사와 학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교사가 애들을 데리고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읽고 토론하고 (아니면 그냥 토론하고), 글쓰기가 왜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얼마전에 본 프랑스 영화 "클래스"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유도해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이를 발전시켜 자신에 대해 글을 써보게 하는 것, 이런 일이 교사에게 그토록 어렵기만 한 일인가?

초등 고학년이 되어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한 번 해보지 않고 지나가는 현실이 막막하다. 지식 위주의, 시험 위주의 수업 방식으로, 모든 공부의 기본이 되는 토론과 글쓰기를 방기하는 것, 정말 학교에 머무를 이유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지식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니 학교라는 학습 공동체가 살아남으려면 그것이 토론의 장으로 활용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10년 4월 17일 토요일

통역자의 역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The Terminal에서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 (Tom Hanks 주연)는 크로코지아인으로 미국에 도착한 날 입국이 불허 된다. 그의 조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입국도 귀국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공항의 미아가 된 그는 공항 관리국장의 골칫거리가 된다.
어느 날 영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러시아인이 소동을 일으킨다. 아버지를 위해 구입한 약이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서 압수 당하게 되자 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칼을 꺼내 들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한 공항 관계자들은 빅터를 불러 와서 통역을 맡긴다. 이때 빅터는 아버지를 위해 구입한 약을 꼭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애원하는 러시안인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러시아어로 '염소'란 말이 크로코지아어로는 '아버지'랑 흡사해서 자신이 잘못 통역했다고 번복하면서.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힘들어도 빅터는 진실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도 얻고,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물론 짧은 동안이긴 해도), 원하던 재즈 음악가의 사인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통역과 번역에서 진실을 옮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한국어의 개성

번역과 관계된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 있다. 이희재 씨의 <번역의 탄생>이다. 이 책은 숙독과 재독을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 다른 외국어와의 비교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비해 동적인 개성을 갖는다고 한다.

"원래 한국어는 특히 추상 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걸 꺼립니다. 전통 한국어는 '무분별한 개발은 자연 파괴를 낳는다.'라는 표현보다는 '무분별하게 개발하면 자연이 파괴된다.'라는 표현을 선호했습니다. '보호를 요청했다'라는 표현보다는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라는 표현을 좋아했습니다."(위의 책 36-37쪽)

영어는 이에 비해 정적이어서 동사보다는 명사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He shouted triupmphantly."도 좋지만 실생활에서는 "He gave a shout of triumph."를 더 많이 쓴다고,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영어 번역이 시작된 이후 명사를 주어로 하는 번역투가 남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국어가 동사적 성격을 잃고 부자연스럽게 변화했고, 이제는 이 부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로 번역투에 우리가 익숙해졌다는 지적이 날카롭다. 번역이 모국어 실력에 크게 좌우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동화 번역

서양의 전래 동화를 패러디한 이경혜 작가의 "바보처럼 잠만 자는 공주라니"의 영문 번역 제목은 Sleeping Beauty? Hardly!이다.

동화 시작 첫 문단의 원문과 영역본을 소개한다.

무시무시한 가시나무 덤불로 뒤덮인 궁궐이 하나 있었지. 그 궁궐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홀로 앉아 백년동안이나 물레를 돌리고 있다고 했어. 훌륭한 왕자가 나타나 공주의 손등에 입을 맞춰야만 공주는 그 고통스런 물레질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거야.

There once was a palace surrounded by a thicket of horrible thorns. In that palace sat a beautiful princess bereft of human company and fated to turn a spinning wheel ceaselessly, year in, year out. Legend said that she would be freed from that tedious, painful work only at the end of a hundred years, when a noble prince would appear and kiss her hand.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웨하스

어린 시절 바삭하고 달콤한 맛이 감미로웠던 웨하스, 이제 종류가 너무나 많아진 과자 속에 파묻혀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내겐 단 맛이 너무 강해 거의 먹지 않는다.
이 과자 이름 '웨하스'가 영어 '웨이퍼스wafers'에서 왔다고 한다. '웨이퍼스'는 '얇은 조각'을 뜻한다. 이 영어 말이 일본에서 '우에하스 ウエハ-ス'로 발음되었고 이것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웨-화-쓰'로 적힌 적이 있다고 1930년대 기록에 남아 있다. 이것이 변해서 오늘날의 '웨하스'가 된 것이다.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화각장식 장

한국의 전통 공예 기술 중 하나인 화각(華角)기술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표면장식 기법이다.
18-19세기 조선 시대 양반 계급의 안방에 들여 놓은 목제 가구나 생활용구에 장식으로 사용된 화각공예는 소뿔을 얇게 잘라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식이다. 오방색을 사용해 화려하고 그림은 민화풍으로 활기차고 재미나다.
이 화각 기술은 공정이 어렵고 절차가 복잡하지만 어렵게 지금까지 전수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영향을 주다

"영향을 주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는 influence이다. 유의어로 rub off on somebody가 있다. 둘 다 "영향을 주다"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

rub off는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의미하는 반면에 influence는 의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의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You should influence him 이라고 말 할 순 있어도 You should rub off on him 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인문학적 교양인

고전읽기가 대세다. 테크놀로지, 시장경제, 포스트모던 문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과거의 지혜에서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인문학이 대세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인간 내면의 가치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강유원의 <인문 고전강의>에서 '인문학적 교양인'은 이렇게 정의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올바른 것을 감지할 수 있는 힘, 구체와 추상을 구별할 수 있는 감각, 역사적 맥락에서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야, 언어 표현의 미묘함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인문학적 교양인'은 평생 공부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기다.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대교약졸

"한국의 담, 그 안에 담긴 은근의 미학"이란 흥미로운 글에서 임석재 교수는 한국의 담이 노장 사상의 핵심인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교약졸은 "억지로 하는 큰 공교로움은 서툰 것과 같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공교로움'이란 말이 우리가 잘 아는 '우연성'의 의미로는 뜻이 잘 통하지 않아서 표준대사전을 찾아보니

"대교약졸"은 "매우 공교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는 뜻으로,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은 뽐내거나 과장하지 아니함으로 도리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나와 있다.

"공교롭다"와 "공교하다"는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추치게 된 것이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라는 공통된 의미를 갖지만 "공교하다"가 "솜씨나 꾀 따위가 재치가 있고 교묘하다"는 의미를 하나 더 갖는다.

그렇다면 위에서 "억지로 하는 큰 공교로움"은 "억지로 하는 공교함"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2010년 4월 9일 금요일

책과 사람

언젠가 읽었던 <책, 세상을 훔치다>가 반칠환 시인이 펴낸 걸 이제 확인한다.
단시 <노랑제비꽃>을 쓴 바로 그 시인이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을 책을 주제로 인터뷰한 글을 모았다. 내가 좋아한, 이제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외에 정력적인 글쟁이인 장석주 시인, 번역가 김남주, 등 평소 궁금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앞머리에 키케로가 인용되어 있다: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A room without books is as a body without a soul.")

그런데 책이 정리되지 않은 방은? 영혼이 길을 찾지 못한 육체?

2010년 4월 8일 목요일

서울 탐방 관련 책

서울의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도시의 일상성에 초점을 맞춘 인문 교양서들이 속속 발간되고 있다. 미시사적 시각에서 서울의 공간과 삶을 다양한 앵글로 포착하고 동시에 사라져 가는 도시 풍경을 기억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이현군의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
우동선, 박성진 등저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권기봉의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김유경의 <서울, 북촌에서>
옥선희의 <북촌 탐닉>
임형남, 노은주 공저 <서울 풍경 화첩>
권영성의 <나는 골목에 탐닉한다>

2010년 4월 7일 수요일

눈(目)

동양인은 흔히 눈이 검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어로는 black eyes가 아니라 brown eyes로 번역해야 한다. black eyes는 '눈가에 퍼렇게 멍이 든 눈'이란 의미이다. 그러니까 I have black eyes라고 하면 "나는 얻어터져서 눈이 퍼렇게 멍들었다"라는 의미가 되니 주의해야겠다.

요즘의 내 눈은 나이가 들어서 침침하고(dim), 컴퓨터를 자주 들여다보니 뻑뻑하고(dry), 가끔은 충혈되기도 한다 (bloodshot).

영어에서 eye candy는 우리가 생각하는 눈깔사탕이 아니라 "눈요깃거리"라는 뜻. 즉 '눈이 먹는 사탕'이니까 '눈이 즐거운 광경'이라는 의미다. 눈깔사탕은 영어로 jawbreaker 또는 gobstopper라고 하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턱jaw가 부서지거나, 입gob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덩어리 Voca - 다락원)

2010년 4월 6일 화요일

비폭력대화

"비폭력대화는 깨어 있는 대화이고, 늘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면서도 내 마음도 함께 챙길 수 있는 '연민의 대화'이다."

"비폭력대화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대화 방법입니다."

(이윤정,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

이윤정 씨의 위의 책은 사춘기 자식을 둔 엄마들의 마음 고생에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아이와의 갈등이 종종 폭력적 언어 사용에 기인함을 명시함으로써 이를 자각하고 반성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갈등의 해결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제시하는데 이 모델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네 가지이다: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부탁이 그것이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표현하기, 관찰한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나의 느낌 표현하기, 나의 느낌이 어떤 욕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표현하기, 그리고 상대가 해 주기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부탁하기이다.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부모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감정적이 된다.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하면서 그냥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관찰 대상처럼 객관화하고, 그에 상응하는 내 느낌을 언어화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를 부탁하는 태도로 표현하는 것. 이 네 가지 절차를 염두에 두고 훈련하면 성숙한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일 유학 시절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Es gibt keine Liebe. Es gibt nur Zeichen der Liebe."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은 없다. 다만 사랑의 표시만 있을 뿐이다." 피카소가 했던 말을 인용하셨던 것도 같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제대로 표현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랑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비폭력대화는 부모의 사랑이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참 좋은 표시인 것 같다.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시 한 편

노랑제비꽃

노랑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반칠환 시인의 이 단시는 작은 제비꽃에서 우주로 뻗어가는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지구를 제비꽃 화분으로 본 발랄하면서 심오한 이 발상은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명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이 시를 변용한 시 한 편,

연어 한 마리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강물이 필요하다
바다와 이어진 강물이 필요하다
4대강은 끊어질 수 없는 연어의 숨자리다

2010년 4월 4일 일요일

미인과 아름다운 사람

"미인은 아니지만 아름다워요. 이 두 가지는 매우 달라요. 미인이란 얼굴에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에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력이 유지되는 사람이죠."

(헨리 제임스, 아메리칸 -민음사)


이 소설의 주인공 뉴만은 젊은 나이에 직업적으로 성공한 미국인이다. 그는 어느 순간 돈 버는 일에 싫증이 나서 모든 걸 팽개치고 유럽으로 온다.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우연히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다가 옛 친구 트리스트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알게 되는데, 이 부인은 그를 위해 여자를 중매해 주고 싶어 한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이 상황에서 그녀가 소개하려는 여자에 대해 말하면서 미인과 아름다운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

'미인'(美人)과 '아름다운 사람'은 한자어와 순수 한국어로 사실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구분이 된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유용하게 사용된 경우라고 할까?그렇다면 원서에서 영어로는 어떻게 구분이 되고 있을까?

"She is not a beauty, but she is beautiful, two very different things. A beauty has no faults in her face, the face of a beautiful woman may have faults that only deepen its charm."

영어에서는 a beauty와 being beautiful로 명사와 형용사 사용을 통해 구분하고 있다.

아무튼 '미인'이 되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게 더 쉬울 것 같기도 한데, 왜냐하면 얼굴에 결점 없기는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결점이 있어도 매력이 유지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그 매력을 어디서 구할 것인지가 관건이니까.

"the face of a beautiful woman may have faults that only deepen its charm"라는 문장은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에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력이 유지되는 사람이죠"로 번역되어 있다.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이렇게 번역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에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점이 오히려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