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평등의 역설

알렉시스 드 토크빌 Wikipedia

알렉산더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열린책들, 2006, 김인순 역)을 읽었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제목에 끌렸고, 가까운 구립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빌려와 읽은 책이다. 다행이도 책의 내용은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

잘나가던 언론인이었던 저자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직장을 잃는다. 이제껏 누려오던 풍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그는 '독일인 답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풍요로움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 그것이 우릴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묻고, 그게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우아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종횡하고 지금의 독일사회를 분석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언급하면서 토크빌을 인용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프랑스 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책을 쓴 걸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평등한 사회가 인간에게 이롭기만 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건, 이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최고를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있어서 제약이 따랐고 따라서 그 안에 안주하고 그 안에서 만족을 느꼈을 텐데 이제 모두가 능력과 상관 없이 최고를 지향하기 때문에 불행은 시작된다는 식이다.

토크빌의 글을 인용해 보자.

"출생과 소유의 모든 특권이 폐지되고 누구나 모든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면 (...) 사람들은 마음 놓고 무한히 야심을 펼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이 위대한 것을 이루라는 소명을 타고났다고 즐겨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날마다 경험을 통해 수정되는 잘못된 생각이다. (...) 불평등이 일반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인 경우에, 극심한 불평등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평등한 경우에는, 아주 미미한 차이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이것은 민주주의의 주민들이 풍요 한가운데서 기이하게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 나는 부자들이 누리는 것을 희망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 가난한 시민을 미국에서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위의 책 189쪽에서 재인용)

토크빌의 생각을 읽으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아이들의 재능과 흥미는 뒷전으로 하고 그저 남들을 좇아 명문대를 지향하는, 그래서 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부모들,
진정 평등한 사회는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삶을 누리며 똑같이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마암분교 아이들

Copyright 2011, SAH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마암분교 아이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임실군 마암면에 있는 시골 학교다.

작가는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아이들과 친해졌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몇 명 안되는 작은 분교의 아이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공부하고, 노는지.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을 끌어안아보면,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261쪽)


아이들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도회 사람들의 문제인 것 처럼 보인다. 그냥 크도록 놔두지 못하고 재촉하고, 이끌고, 통제하고, 부모의 불안함 마음이 애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하지만 애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물론 부모는 안전한 테두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언제라도 의존할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 그래야 애들은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다. 애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 만큼 불안한 존재가 아니다.

2011년 11월 7일 월요일

제주 올레

Copyright 2011, SAH


10월 말에 친구랑 2박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이틀간 7코스와 10코스를 매번 7시간 이상 걸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과 시원한 바람 속에 다리는 뻣뻣해지고 발가락은 아팠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깊이와 높이에 대해, 내가 지나온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길은 미래로 열려 있었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서도 자신을 찾아나선 내가 안쓰럽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삶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종점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린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겠지. 내가 길을 제대로 들어섰는지, 조금 쉬어가야 할지, 누구에게 말을 걸지, 위험한 길은 피해가야 할지, 모험을 감행해야 할지. . .

여행 중에 내 마음 속에 찍어 놓은 풍광들이 한동안 산소처럼 내 삶에 활력소가 될 것 같다.

2011년 10월 27일 목요일

가을빛 아래 기다림

Copyright 2011 SAH


간송미술관에서 풍속화 대전이 열렸다. 구청에서 개최한 조선미술사 강의에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백인산 씨가 한국 미술의 여러 면모를 인상깊게 들려주어서, 이번 가을 전시회에 꼭 가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일찌감치 집을 나서 개장 시간 2분 지나 도착했는데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천천히 이동하면서 미술관 정원 안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에 마음을 활짝 널어 말렸다. 기다림의 지루함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옛 시간이 멈춘 이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입장객 수를 조절하면서 몇 명씩 나눠서 들여보내도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층에서 시작해 일층으로 내려오는 순서에 따라 계단을 올랐다. 대리석 계단과 오래된 건물의 아치를 느끼면서 전시장에 들어섰다. 사진으로만 알고 있던 크고 작은 진품의 풍속화들이 몇 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시간들과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벅찼다.

이제 나이를 먹을수록 옛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삶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묻게 된다.

자신을 그려 넣은 김홍도의 그림들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인간에 대한 통찰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다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접했다.
작가는 인간이란 선인, 악인으로 구분될 수 없고, 현인,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등,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 '인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다.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든 흐른다는 데는 변함이 없으나 강 하나만 생각해 보더라도 어느 지점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다. 또 여기서는 맑기도 저기서는 탁하기도 하고, 차기도 따스하기도 하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온갖 요소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어 어느 경우 그중의 하나가 돌출하면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사람에 따라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민음사, 342쪽)

인간의 정체성이 아주 복합적이라는 말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정체성이란 한 인간의 다중 역할과 성격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적 환경에 다양하게 반응을 보이게 된다.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이다가도 한번씩 버럭 화를 낼 때 '화내는 성질'이 돌출되는데, 톨스토이의 이 말은 그게 보통이라는 위안을 준다.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주도적으로 행복하게 느끼기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외적인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조용한 북카페에 앉아 책을 보다 얼굴을 들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안개가 자욱이 가라앉은 호수가를 걸으며, 맛있는 음식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이런 순간, 또는 잠깐 동안의 시간에 행복감을 맛본다.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이 첫 번째 습관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코비 Stephen R. Covey는 자신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원제: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역시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따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주도적인 일은 행복하게 느끼는 것, 즉 진심으로 웃는 것이다. 행복은 불행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주도적인 선택이다" (129쪽)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렇구나 하는 깨우침이 있었다. 그래, 우린 언제나 행복한 순간이 내게 찾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행복이 찾아올 거라 믿으며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힘든 시간을 견디면 행복이 보상해 줄거야 하고.

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것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니 갑자기 행복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리는 듯 하다.

사춘기 딸 아이가 가끔 웃겨줄 때 의식적으로 더 웃어본 경험이 있다. 나의 진지함에서 벗어나, 아이와 더 잘 호흡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그 의식적 반응이 날 더 즐겁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니까 이제 좀 더 의식적으로 행복하게 느끼기를 주도해 봐야겠다.

헌데 불행도 주도적인 것이라는 말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겠다.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박명(薄明)의 시간

독일 유학 시절 남자 친구에게 박명의 시간은 너무 외롭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타지에서의 삶이 그런 느낌을 갖도록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병주의 단편 '쥘부채'를 읽다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걸 보고 박명의 시간에 대한 내 느낌을 새롭게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박명의 시간이 주위를 에워쌌다. 전등이 꽃피기 시작했다. 유 선생의 의견에 의하면 이 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시간은 지혜의 시간이라고 했다. 어둠을 비추는 전등이 이 시간에만은 꽃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 시간은 또 노인의 주름살을 밉지 않게 하는 시간이며 초로의 잔주름을 뵈지 않게 하는 시간이며 청년의 미숙함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며 승자의 뽐냄도 패자의 억울함도 노출되지 않는 시간이며 미녀의 미도 추녀의 추도 발언권을 잃는 시간이며 만상이 제대로의 품위와 가치로서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했다."

"지혜의 시간", "만상이 제대로의 품위와 가치로서 나타날 수 있는 시간",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롭다는 말은 아마도 우리 인생사가 밝음과 어둠이 서로 얽힌, 그래서극명한 답이 없이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란 말인지도 모르겠다. 단편의 내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연히 쥘부채를 손에 넣은 주인공이 쥘부채를 만든 여성 수감자의 사랑을, 그녀가 죽고 나서 엮어주게 된다는 신비로운 우여곡절이 이 단편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 박명의 시간을 몸으로 느낀 적이 있다. 어두워지긴 했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고, 하지만 선명하게 볼 수 없는, 어쩌면 견디기 어려운 시간, 약간은 폐쇄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순간을 잘 견뎌 냄으로써 지혜를 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2011년 9월 17일 토요일

Chai Latte

집 근처에 새 카페가 생겼다. 뉴질랜드식 카페라고 소개되고 있는 그곳 메뉴에 Chai Latte가 있다. 커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는 아니다. 뭘까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인도식 차였다. 홍차에 여러 향신료를 섞고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만든 향이 독특한 달콤한 차다.

Chai는 중국어의 Cha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차를 의미하는 말이다. 영어식으로 차는 tea인데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tea와는 다르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굳이 Chai라고 쓴다. 찾아보니 Chai의 정식 이름은 Masala Chai, 영어로는 "spiced tea", 우리말로는 "향신료가 첨가된 차"란 뜻이다.

Chai 차는 보통 우유를 넣어 마시기 때문에 Chai Latte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라떼 커피처럼 라떼 차가 되는 것이다. 이 차는 원래 인도 남부 지방에서 유래했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서구에서는 이미 몇 백년 동안 이 차를 음용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질랜드까지 전파된 것이다.

향신료로는 cinnamon (계피), cardamon (소두구), cloves(정향), pepper (페퍼), ginger(생강)이 들어간다고 한다. 뜨겁고 달게 마셔야 향신료의 향과 맛이 살아난다고.

독일에서 Yogi Tea란 걸 마셔본 적이 있다. 인도 차였고 뜨거운 물에 차를 몇 스푼 넣어서 끓인 후에 우유를 넣고 걸러서 마신다. 이때 꿀이나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들어 마시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진다. 요가하는 기분을 갖게 만드는 그런 차?

카페 여주인은 Chai Tea를 시킨 사람이 나중에 보니 반 이상 남기고 갔다고 했다. 아마 잘 모르고 Special Tea에 있어서 시음을 해 본 모양인데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향신료가 좀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맛을 들이면 아주 '특별한 차'다.

인터넷에서 찾은 homemade Chai Latte의 레시피를 소개하자면:

2컵의 물에 티백 2개를 넣어 끓이다가 1/8~1/4 티스푼의 생강, 소두구 가루를 넣고, 정향 한 개를 다 넣고 계피 스틱 한 개를 넣어 끓인 후에 1/4 티스푼의 설탕과 2컵 반의 우유를 넣어 끓인 후 걸러서 마시면 된다.

2011년 8월 8일 월요일

지혜롭게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언제부턴가 나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불혹을 훌쩍 뛰어 넘어 지천명의 나이 직전에 다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같다.

한겨레 신문의 칼럼니스트 김정운은 오늘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가 제목으로 내세운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원래 독일어책 Heute kommt Johnson nicht('오늘 존슨은 오지 않는다')의 한국어 변역 제목이다. 책 내용은 아주 한가로운 노인의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에 관한 이야기라고 적고 있다.

김정은은 또한 제임스 페너베이커 미국 심리학 교수의 실험을 인용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표현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보다 '우리'가 더 사용되고 시간과 관련된 단어들은 줄어든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동사의 시제가 나이가 들수록 미래형이 많다는 점이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과거형을 많이 사용하고 중년은 현재형, 노인은 미래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미래형 단어를 많이 쓴다는 건 뭘 의미할까? 미래를 생각한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시간의 범위가 확장됨을 뜻할 테니까 아마도 시간이 많아짐을 뜻하는 것 같다. 페너베이커 교수는 지혜롭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시간이 아주 많아지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많다는 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그럴 시간이 없을 테고, 그만큼 내면적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가만히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내면의 시간이다. 이 내면의 시간을 많이 갖고, 그것을 외연으로 확장한다면, 어쩌면 지혜롭게 나이가 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

CNNgo.com 사이트에 "50 reasons why Seoul is the greatest city in the world"라는 기사가 떴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 최고'의 도시로 거론된 것이다.
그 이유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 Springing from the ruins of the Korean War, Seoul has boomed in just 50 years to become the world's tenth most economically powerful city and second largest metropolitan area (약 50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의 서울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 COEX: Asia's largest underground mall (아시아에서 가장 큰 지하 쇼핑몰)
- Incheon: Best airport in the world (최고 수준의 인천공항)
- galbi and kimbap (맛있는 음식)
- Drama queens(한류 열풍을 이끈 배우들)
- bright happy jjimjilbang(찜질방)
- world's smartest and cheapest personal assistants: excellent delivery system(무엇이든 배달 가능한 곳 -- 영리하고 싼 노동력)
- a 'bang'(room) for every occasion (온갖 흥미롭고 편리한 '방'들)
- world's most wired city (인터넷 연결이 가장 잘 되는 곳)
- excellence in flight (최고 서비스의 항공사)
- superb service: random freebies, no tipping (좋은 서비스에 팁은 안 내도 됨)
- beautiful women and beautiful men (아름다운 남녀)

서울의 변모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은 더 큰 매력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끌 것이다.

2011년 6월 24일 금요일

불안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오은영 박사가 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라는 책에서 저자는 무관심한 아빠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그 기저에 역시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불안이 모성의 무한한 보살핌 본능에서 비롯된 거라면 아빠의 무관심은 불안한 주제를 다루고 싶지 않은 마음, 즉 불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 불안의 본질은 '고집', '회피', '불신', 그리고 '경계심'이라고 진단한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경향, 따라서 쉽게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의 마음과 경계심이 그것이다.

저자는 불안의 원인이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부장 사회였고 40-50대의 아빠는 여전히 그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은 집안의 우두머리로 집안의 일을 책임져야 하고 따라서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고 한다. 그만큼 집안이 어떻게 운영되느냐는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낙관적으로 보려는 경향을 띤다. 무관심은 이러한 불안을 가장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이 책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의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경우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분석하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를 조언하고 있다. 3-15세 아이를 둔 부모의 필독서라 소개되고 있는데 실제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2011년 6월 23일 목요일

이슬람 정육점

한국 사회에서 낯선 얼굴의 이방인을 만나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산업 연수원의 자격으로, 또는 국제 결혼을 통해서 한국에 오게 된 이들은 이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뉴스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가 거론되기도 하고, 결혼 이주를 통한 다문화 가족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201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은 이방인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을 엿보게 한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 땅에 눌러 앉아 살게 된 터어키인 하산은 소설의 주인공인 '나'를 입양한다. 이태원의 이슬람 성전 주위에 주거하며 정육점을 운영하는 하산은 "내가 알기로는 정육점에서 난도질하는 유일한 무슬림"이다. 소설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회상의 형태를 띠고 과거를 기억하는 식으로 서술된다. '나'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이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중학교 때쯤 하산에게 입양되는데, 그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이웃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얘기가 우울하고도 재미나게 전개된다. 역시 한국 전쟁에 참여하고 한국에 남아 살게 된 그리스인 야모스, 식당을 운영하는 가이아 여신을 닮은 안나 아주머니, 말더듬이 김유정, 등등.

소설은 삶의 주변부 인생들과 그들의 인간 관계를 조명하면서 미래 한국 사회의 구성원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혈연 공동체인 한국 사회가 낯선 이방인들의 유입으로 더 이상 순혈주의를 외치는 것이 의미 없음을, 인간의 관계는 피보다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낯선 이방인에게 입양된 '나'는 소설 후반부에 가서 죽어가는 하산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그의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소설은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된다)

혈연을 넘어서는, 사랑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비전을 보여준다고 할까.

2011년 6월 22일 수요일

진짜 공부

이창준의 <진짜 공부는 서른에 시작된다>를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Authentic Learning. '생존'을 넘어 '성장'을 부르는 내 인생 공부 혁명이다.

경영학 박사이며 리더십 개발 전문가인 저자가 직장인 대상으로 쓴 일종의 자기 계발서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의 교육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이 사회, 정치, 그리고 삶 전반에 미치는 파장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그의 처방전은 한 마디로 오센틱 러닝(Authentic Learning)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 승진을 위한 공부, 성공을 위한 공부 등 외부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 '거짓 학습'이다. 이 '거짓 학습'의 주범은 우리 사회의 경쟁구조와 결과와 성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태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고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성장이 없는 삶은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잘못된 학습을 강요받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심리학, 경영학 등 다양한 이론의 틀을 빌려 명쾌하게 문제를 개념화하고 오센틱 러너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직장인 뿐 아니라, 학부모, 교육자, 누구라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단지 얻는 게 아니라 삶의 변혁이 일어날 수도 있다.

2011년 4월 24일 일요일

사리다

김훈의 짧은 글 "밧줄의 아름다움"에서 '사리다'가 이미 알고 있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된 경우를 알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리다'는 '몸을 사리다'로 쓰일 때 의미였는데 '밧줄을 사리다'라는 의미로 쓰였길래 사전을 찾아봤다.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사리다 1) (국수나 새끼 따위를)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어 감다 2) (뱀 따위가 몸을) 똬리처럼 감다. 3) (비어져 나온 못끝 따위를) 꼬부려 붙이다. 4) (겁먹은 짐승 따위가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끼다. 5) (몸을) 아끼다. "몸을 ~ "6) 정신을 바짝 가다듬다 "마음을 사려 먹고 굴속으로 들어가다"

그러니까 '밧줄을 사라다'에서의 의미가 '사리다'의 첫째 의미였던 거다. 그런데 5의 의미만을 알고 있었으니... 내가 안다고 믿었던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선원들은 밧줄을 소중히 다룬다. 밧줄이 엉키거나 꼬이지 않도록 늘 가지런히 사려놓는다."

김훈은 이 글에서 배의 선원들이 사용하는 밧줄, 암벽등반가의 자일, 소방관들이 서로를 엮는 호스와 같은 밧줄이 왜 아름다운지를 쓰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밧줄의 아름다움이다."

2011년 4월 18일 월요일

언어와 사고

인간의 사고에 언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현대 언어학에서 많은 연구가 되어 왔다. 모국어가 모국어 사용자의 사고를 제한한다는 올프(Wholf)의 제안이 한동안 유력했지만 이 가설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이론도 나왔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 현재, 과거, 미래를 나타내는 동사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올프의 이론대로 한다면 중국인은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한 시간 관념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따라서 모국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긴 해도 제한적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는 어떤 의미에서 그 모국어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게 경험적 사실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몰타인에게 아내가 몇 명이냐고 물으면, 그가 여러 명의 아내가 있더라도 현재로 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로 답하기 위해서는 부인이 바로 그 자리에, 그 시각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래서 답은 그냥 과거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몰타어에서는 이런 류의 질문에 있어서 구체적인 답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어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문장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영어가 되지 않는 경우다. 영어에서는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써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각각의 언어가 갖는 특징이 되겠고, 이 언어의 특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언어학에서도 이 영향의 범위를 제대로 가늠하고 측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2011년 4월 10일 일요일

대자적 존재

세상의 모든 것은 '즉자적(卽自的) 존재'와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나뉜다. 바위, 나무, 돌과 같이 생각 없이 그 자체로 머무는 것들은 즉자적 존재인 반면에, 생각하며 자신과 대면하는 존재인 인간은 대자적 존재이다.
인간은 대자적 존재임으로 해서 끊임없이 '실존'해야 한다. 인간의 본질은 이 실존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실존(實存)'은 또한 끊임없는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택은 당연히 인간을 본질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나의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실존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이 관계 역시 불안하다. 왜냐하면 상대방 역시 끊임없이 선택하며 자신의 실존적 삶을 사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는 불안하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나의 지옥'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인간 관계는 내 실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간 관계에서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청소녀 딸 아이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지옥을 내가 경험한다. 하지만 그게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란 걸 서서히 깨달아가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성 정체성

중3 딸아이가 동성애자를 소재로 한 미드를 봤다고 한다. 친구가 소개해 줘서 같이 보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꽤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블로그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려 볼 수 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딸과 친구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에 반해서, 성적 호기심이 발동해서 봤을 수도 있다. 한국의 아이돌 가수 그룹에 대한 팬픽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워낙 널리 퍼져 있고, 팬픽의 내용은 주로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소녀 시대를 좋아하는 딸 아이와 빅뱅을 좋아하는 딸 친구는 팬픽에서 레즈비언식의, 게이식의 동성애 연애를 픽션으로 접했을 테니까.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우연히 나온 동성애 이슈,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세태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한다. 그러면서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관습적, 도덕적 굴레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은 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이다. 왜 동성애자를 차별하는지 순진하게 묻는다.

마침 한겨레 신문에 영화감독 김조광수가 쓴 "게이가 총 들면 국민 실격?"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딸 아이와 함께 읽고 얘길 나눴다. 칼럼을 통해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계간'(닭들이 하는 짓)이란 말로 비하하는 것도,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군형법 제92조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칼럼은 헌법 11조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으로 마무리했다. 딸 아이는 필자의 논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동성애자는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면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수위 높은 드라마도 자유롭게 접하게 되는 요즘 아이들, 약간은 염려되지만 그래도 사고를 넓히고 개방적이 되는 잇점도 있는 것 같다. 수위 조절만 잘 되기를 바랄뿐이다.

2011년 4월 6일 수요일

ADHD와 현대인

ADHD는 영어로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이며 한국어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으로 번역된다. ADHD는 일종의 장애로 분류된다. 두뇌생리학자들은 ADHD를 '도파민'의 문제로 파악하는데 도파민은 만족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적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적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에서 쉴새 없이 두뇌활동을 지속한다. 이렇게 시달린 두뇌는 편안할 수 없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는 쌓인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만족감을 얻기 위해, 부족한 도파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대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약간의 ADHD 장애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장애가 오히려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또 살아남기 위해 그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2011년 4월 5일 화요일

자연의 힘

인간이 자연을 본떠 만든 많은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동일하지 않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비행기를 만들어낸 우리의 조상들 덕분에 우린 대양을 횡단하며 대륙간 이동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 비행기는 추락한다. 예기치 못한 날씨 상황에 잘못 대응한 탓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새들도 폭풍 때문에 추락할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열악한 날씨 조건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본능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새를 닮은 거대한 비행기는 그런 자연 본능을 갖고 있지 않다. 그 거대한 몸을 조종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고, 인간은 새가 아니다.
까치 둥지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지어져 있지만 비바람에 끄떡없이 버틴다고 한다. 둥지가 헐겁고 가벼워서 비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나무와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자연을 따라가는 것, 그것은 자연의 힘이다.
일본 원전이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파괴되고 원자력 방사능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원전이 자연의 힘 앞에서 꼼짝없이 당한 셈이다. 강력한 에너지원이 되는 원자력 발전소는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의 결과는 재앙이다. 자연을 따르는 에너지원의 개발이 그만큼 더 절실해지는 때다. 태양과 바람을 이용한 자연에너지의 길, 그 길이 자연의 힘을 십분 이용할 수 있는, 그러면서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재앙을 막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