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3일 목요일

이슬람 정육점

한국 사회에서 낯선 얼굴의 이방인을 만나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산업 연수원의 자격으로, 또는 국제 결혼을 통해서 한국에 오게 된 이들은 이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뉴스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가 거론되기도 하고, 결혼 이주를 통한 다문화 가족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201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은 이방인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을 엿보게 한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 땅에 눌러 앉아 살게 된 터어키인 하산은 소설의 주인공인 '나'를 입양한다. 이태원의 이슬람 성전 주위에 주거하며 정육점을 운영하는 하산은 "내가 알기로는 정육점에서 난도질하는 유일한 무슬림"이다. 소설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회상의 형태를 띠고 과거를 기억하는 식으로 서술된다. '나'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이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중학교 때쯤 하산에게 입양되는데, 그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이웃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얘기가 우울하고도 재미나게 전개된다. 역시 한국 전쟁에 참여하고 한국에 남아 살게 된 그리스인 야모스, 식당을 운영하는 가이아 여신을 닮은 안나 아주머니, 말더듬이 김유정, 등등.

소설은 삶의 주변부 인생들과 그들의 인간 관계를 조명하면서 미래 한국 사회의 구성원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혈연 공동체인 한국 사회가 낯선 이방인들의 유입으로 더 이상 순혈주의를 외치는 것이 의미 없음을, 인간의 관계는 피보다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낯선 이방인에게 입양된 '나'는 소설 후반부에 가서 죽어가는 하산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그의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소설은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된다)

혈연을 넘어서는, 사랑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비전을 보여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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