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패션을 기억하다

한겨레 신문에 노라노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떴다. 노라노, Nora Noh가 영문이름이다. 한국어 이름은 노명자. 17살에 결혼하고 19세에 이혼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7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후 디자이너로 성공해 85세인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코코 샤넬이라는데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에 대해 다큐 영화를 만들었고, 31일 개봉된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 문화사와 여성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펄시스터즈의 판탈롱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신여성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냄으로써 여성이 자신감과 개성을 뽐내며 사회로 진출하는 데 한 몫을 했다고 한다. 85세인데 사진은 그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모랑 함께 내 어린 시절 지방도시에 첫 양장점을 개업하고 몇년간 그곳 어성들의 멋을 이끌어간 어머니는 유학도 갈 수 없었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가는 것조차 이룰 수 없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패션 수업을 받은 언니와 함께 나름 감각을 익혀 옷을 디자인하고 실전을 통해 패션을 배워갔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그 도시에선 알아주는 이름난 양장점으로 자리잡았던 걸 보면 나름 지방의 패션을 주도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회를 위해 지어주신 드레스도 생각나고, 와인색 겨울 코트는 디자인이 꽤 독특해서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기성복 산업이 발전하고 이에 밀려 양장점과 의상실이 사향길로 들어섰다. 이에 발맞춰 어머니는 기성복 브랜드 매장을 여셨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 수제식 방식으로 양장점을 운영하던 여성이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의 생리를 제대로 알고 계시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갑을 관계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동안 성업을 했지만 점점 더 많은 브랜드가 등장하고 사업수완이 별로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빚을 지고 문을 닫았다. 그 이후에도 작은 의상실을 내서 다시 도전하셨지만 결국 힘들게 꾸려가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어딘가 깊숙이 넣어둔 옛 사진을 꺼내 보고 싶다. 그 당시 멋쟁이였던 엄마 모습도 그립고, 초등 6학년 때 직접 지어주신 옷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도 다시 들여다 보고 싶다. 엄마가 다른 환경에 처했더라면,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면 자신의 패션 감각을 제대로 살려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을 좇아가보고 싶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학

<밤이 선생이다>를 낸 황현산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한겨레 신문에 실렸다(8월20일자). 몇 주 전에 이 책을 사놓고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이전에 황현산 교수의 칼럼을 신문에서 가끔 보면서 그때마다 깨달음, 머리를 치는 혹은 가슴을 때리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인터뷰에서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밤은 선생이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밤의 신분을 말해 준다면, '이'라는 주격조사는 전혀 다른 늬앙스를 지닌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밤만이 선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이러한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전공한 불문학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고려대 불문학 교수로 있다가 2010년에 은퇴한 그는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해서 관련된 책과 번역서를 많이 냈다. 이 전공 영역은 어쩌면 '밤'의 상징성과 관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이 문예사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문학화했다면 말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런데 우리는 그 다른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으로써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함이 상징주의의 까다로움이다. 감각이 실제로는 그 다른 세계 자체라는 것이 상징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결합시켜서 그것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게 초현실주의다."

그의 설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들 문학사조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의 세계는 어쩌면 밤의 세계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미학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미학적이든 윤리적이든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정하고 환각으로서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바로 시다. 그런데 그 환각은 환각으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천명령이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찬란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것이 물질과 현실 속에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문인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란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명상과 수행

일주일간 여름 피서를 다녀왔다. 외지의 조용한 마을에서 일상에서 멀어진 생활을 하면서도, 인터넷이 가능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유튜브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 시리즈를 몇차례 봤다. 그곳은 중생의 다양한 고민이 스님의 지혜로운 답을 얻는 수양처였다. 스님의 답은 삶을 꿰뚫고, 상황을 통찰하는 지혜로운 언사였다. 무엇보다 실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했고, 많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지혜를 얻었다. 많은 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갈등과 걱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토요일 한겨레 신문에서 법인 스님은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라고 쓰셨다. 명상이 "번거로운 세속 잡사를 벗어나 잠시의 안온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상이란 무엇보다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잊고 망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생겨나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왜곡하고, 그 왜곡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

법인 스님의 칼럼은 좀 더 정치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반사 역시 결국 명상수행을 통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수행이 따라줘야 함도 깨닫는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가 한겨레 신문에 <인권 오디세이>라는 오피니언 칼럼 시리즈 첫 글에서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썼다.(한겨레 5월29일자)

서양에서  '휴먼 라이츠(human rights)'라는 말이 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인권'은 다양한 표현으로 변화되어왔다. 남성이 인간을 대표하기도 하고 '권리'의 의미도 역사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객관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어떤 상태'라는 의미가 전해져 오다가 근대에 와서 '인간이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라는 주관적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서구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한자어로 번역되다가 일본에서는 1885년 처음으로 '권리'라는 말이 사전에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권리'라는 번역어가 1880년대 후반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역사적으로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인권'이란 말보다 '의권'(義權)이란 말을 제안한다. '정당하고 옳다'라는 의미와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란 뜻이 잘 배합된 말로서 이 말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의도가 수긍이 가지만, - 게다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권리까지 고려한다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의권'으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다양한 그룹의 인간들이 그 차이 때문에 차별받는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권'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이 '의권'보다는 더 구속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인권운동이 여타 인도적 개념과 구분되는 핵심적 이유가  '권리의 객관적 규범과 주관적 요구자격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즉 '권리'에 내포된 두 가지 측면이 여기서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하나는 '정당하고 옳은' 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굴 될 수 있고(아마도 의식의 확장으로), 그리고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 입법화와 제도화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사회의 소수자가 당하는 불이익과 편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다수들이 갖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인권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고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 최근 인권운동사랑방이 엮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도 추천할 만하다. 아니 추천 정도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씩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13년 5월 4일 토요일

만화를 다시 보다

한겨레 토요일 신문 커버스토리로 만화가 허영만 씨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만화는 공짜'라는 사회적 인식과 싸우기 위해 허화백이 카카오스토리에 식객을 유료로 연재하게 되었다는 기사였다.

인터뷰 기사와 더불어 실린 다른 기사에서는 한국의 만화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해방 후 대본소(貸本所)라 불린 만화방을 통해 만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만화 전문지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1980년대에 르네상스 시기를 맞은 이야기, 1990년대에 도서대여점의 급증과 일본 만화의 직수입으로 만화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웹툰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신인만화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것 등 흥미로웠다.재밌는 건 만화가의 위상이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만 군사정권 때는 만화책이 '화형식'을 당하고, 직업이 만화가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에서 열심히 만화를 보고 집에까지 빌려가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빠들과 학교도 빼먹고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그 시대에 초등3-4학년들은 75% 정도가 만화방을 찾았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들이 만화와 함께 성장했구나 싶다.
<식객>은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은 만화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12권 정도까지 구입해서 온 가족이 돌려 읽었었다. 애들이 초등, 중등 때였다. 음식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감동적인 서사가 함께 하는 책을 읽고 애들은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체험하고 마음을 살찌우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 시대 왕이 먹었다는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도 함께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다.


최근에 처음으로 만화가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정가네 소사>를 쓴 만화가 정용연 씨를 책모임의 한 회원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만화를 읽고 저자를 초대했었다. 처음 책을 낸 작가와 나눈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만화를 그리는 일이 대단한 노동이란 사실이었다. 3권의 책으로 나온 작품을 만들면서 어깨가 빠지고 팔에 무리가 오는 등, 실로 창작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오롯이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금방 쉽게 읽어낼 수 있는 만화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허영만 화백도 이번에 유료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만화 일생을 걸었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앞선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만화작가로 살아가고 싶어도 너무나 각박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창작품과 문화적 콘텐츠가 생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꽤 성공했다고 하는 그조차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문하생을 먹여 살리며 작업하자면 한 달에 몇 천만원이 필요하고, 벌어서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의 시도가 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문화계의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공짜 좋아하는 우리도 이젠 최소한의 댓가를 치르며 좋은 만화를 볼 수 있는 교양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가들도 노동의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오병이어의 기적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우연히 보게된 방송에서 법륜 스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렇게 해석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에 학교를 짓고 도와주시는데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걸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먹이기로 했고 1인당 150원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돈 1000원이면 한 아이가 거의 일주일간 영양보충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스님은 빈그릇 운동을 통해 하루에 천 원 저금한 돈을 모금해서 배를 굶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계신다.
우리 돈 천 원은 다른 곳에서는 하루 생활비가 되기도 한다. 근데 그 하루 생활비도 못 버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12억이나 된다고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이 2000명, 3000명을 먹여살리는 기적이었다. 근데 그건 1000원으로 한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매일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처음이었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사실 기적이 아니었다. 그건 '사랑'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일이었다.

빈그릇 운동을 통해 잉여와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파괴를 줄이고, 남을 돕는 운동에 이미 백만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빈그릇처럼 자신을 비움으로써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들이다.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

조선일보에 남진우 평론가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최근에 두 권의 평론집 <나사로의 시학>와 <폐허에서 꿈꾸다>를 12년 만에 냈다고 한다. 각각 시와 소설 비평집이다.

함께 실린 사진 속 풍경,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선 그의 옆 아래 위가 온통 책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책장 풍경. 그렇다. 작가 신경숙 씨의 남편이다. 위층은 남진우 씨의 책, 아래는 신경숙 작가의 책이 꽂혀 있다고. 16단 붙박이 책장이 빼꼭하게 성벽을 이루고 있다.

인터뷰에서 남진우 씨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문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 시각을 변화시키는 거다. 이 관점에서 문학을 능가하는 예술이 있나. 그런 점에서 문학이 가진 힘은 쇠퇴하지 않았다."

여전히 문학의 힘을 믿는 그는 문학의 죽음, 위기에 대해 떠들기 전에 제대로 된 작품을 쓰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를 꼽았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넘어서는 작가가 있다면 그를 욕하라고도 말한다. 둘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그가 새 비평집에서 제안하는 것은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작가 보르헤스가 창안했고, 학자 푸코가 논리화한 개념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상은 단일한 세계가 하나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다양한 세계가 있고 다양한 해석이 병렬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러한 상상력을 구현하는 작가로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을 언급한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남진우의 평론집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가 키워드로 잡아낸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 궁금하다.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20년의 시간

동네 영화 모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얼마전부터 옛날 영화들을 보고 있다. 격주로 열리는 모임인데 매번 참석은 못해도 한 번씩 시간 나는대로 가본다. 기대했던 것보다 영화 본 후 토론이 꽤 잘 이루어져서 계속 가게 되었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사람이 적게 모일 땐 그렇다).

이번 주엔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를 봤다. 1993년에 만들어진 영화,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본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독일 뮌헨 영화제에 소개된 이 영화를 커다란 화면에서 보면서 전율과 감동으로 가슴 떨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 20년이 지난 후 다시 보는 영화가 어떻게 다가올까 내심 기대가 컸다.

한 마디로 영화는 내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2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년 전 너무나 강렬하게 내 가슴을 흔들었던 영화였던만큼 장면 하나하나 기억에 남아 있었고, 그래서인지 작은 화면으로 보는 장면들은 크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물론 순간 순간 여전히 매혹적인 영상들도 있었다. 홀리 헌터의 표정 연기, 광활한 바다와 그 앞에 놓여진 피아노... 영혼을 일깨우는 낭만적 무한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더 이상 자연스럽지 못했다.
6살 때부터 말을 잃은 에이다는 어린 딸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온다.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으로만 신부를 알고 있다가 처음으로 에이다를 본 남편은 그녀의 몸이 작은 것에 실망한다. 영국인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원주민 땅을 사들이는 남편은 서구적 문명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가부장적, 상업적 마인드를 가진 그는 아내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해변에 남겨두고 온다.

피아노가 에이다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감지한 원주민 남자는 그녀를 위해 남편과 거래를 한다. 자신의 땅을 팔아 피아노를 사들여 에이다가 자기 집에서 피아노를 치게 하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피아노 교습을 받겠다는 조건을 내걸어서. 그렇게 에이다는 그를 방문하기 시작하고 둘 사이의 사랑이 싹튼다.

두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은 에이다의 검지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냄으로써 관계를 끊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려준다. 두 사람은 뉴질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에이다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나오면서 영화가 시작하고 마지막에 다시 내레이션이 나온다. 근데 내레이션이 너무 어린 소녀의 목소리를 하고 있어서 에이다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어긋남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몇 번씩 날 불편하게 했다.

딸 아이가 구멍을 통해 엄마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지만 전혀 놀라는 표정도 없이 무심해 하는 상황이라든가, 그러면서 나중엔 엄마가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걸 말리는 장면, 이를 목격하는 남편이란 설정은 인위적이고 억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중에 아이가 엄마 심부름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 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원주민 남자가 에이다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조금은 생뚱맞고 (온몸을 드러내고 자신과 같이 눕자고 청하는 장면), 에이다가 남편의 몸을 만지는 장면도 웬지 어색하다. 에이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럴 수 있는 건지?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상황이 가능할까?

영화를 보면서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들은 개연성의 문제였던 것 같다. 20년 전, 영화는 한 마디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소재와 설정, 예술적 영상, 끔찍한 장면, 적라의 몸.  어쩌면 문명 세계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관객들은 감성과 본능이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영화의 장면을 통해 위로와 대체 만족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약간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음악의 역할도 결정적이다)가 관객을 단숨에 흡입했고, 그렇게 난 영상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삶의 굴곡을 겪으면서 현실 세계에 뿌리내린 지금, 이 영화는 내게 여러 부분에서 억지스러워 보였다. 감독의 메시지가 충분히 전해지긴 해도 그렇다. 에이다라는 여성이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고, 그 세계를 예술적 영혼의 세계로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

2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작가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작가로 만들어지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을 읽고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선언함으로써 성 차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페미니즘을 무장시켰다. 1934년에 출간된 <작가 수업>에서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고 누구나 노력과 훈련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뛰어난 작가들을 생각할 때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자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 회의하고 불안해하며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가 되는 비법이 있고 그 비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그녀가 제시하는 비법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그 이전에, 글을 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일단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다름 아닌 글쓰기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시간을 내서 글을 쓰라고 제안한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곧바로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 상태에서 글을 써내려가고, 하루에 한 번 짧은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글을 쓰라고 한다. 이러한 글쓰기 훈련은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그녀가 제안한 이 방법은 이 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특히 <작가 수업>을 “글쓰기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한 줄리아 캐머런은 자신의 책 <아티스트 웨이>(1992년 출간)에서 브랜디의 제안을 ‘모닝 페이지’ 기법으로 부활시켰다. ‘모닝 페이지’는 우리 속의 창조성을 일깨우는 하나의 도구이다.

매일매일 글쓰기 외에도 저자는 작가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아이 같은 감수성과 순수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어른스러움과 분별력 갖기, 무의식과 의식 간의 균형 잡기, 영감을 주는 책과 친구 만들기, 자신의 취향과 장점 찾기, 단순하고 건강한 일상을 통해 글쓰기에 집중하기 등과 같이 일반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뿐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방법들까지 제시한다. 잘 쓴 글을 읽고 기술을 모방하는 법, 단어 배분과 문장 호흡, 그리고 작가로서 책읽기의 구체적 방법 등이 그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작가 되는 비법을 전수받고 그것을 실천하는 건 결국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분’의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다. 실천이 힘들고 변명이 앞선다면 우리는 진정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은 왜? 무엇 때문에 글을 쓰려하는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는가? 아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작가가 된다.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든 글을 쓰는 건 그러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건 결국 글을 쓰는 것이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작가가 된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작가는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이고 평가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렇다면 욕구를 표현하는 도구로써의 글쓰기를 통해 우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혹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지고 싶은 욕구, 나와 내 주위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구. 그렇게 글쓰기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닐까. 삶이 계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글쓰기는 공유의 수단이 된다. 브랜디는 작가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눈에 비치는 그 모습 그대로 공통된 경험 안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 각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살아내는 삶을 다른 이들과의 공감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타인과 공유하는 글쓰기. 이 이유만으로도 ‘작가수업’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21세기 인간 파우스트 - 구원받지 못하는 고독한 초인?

알렉산더 소쿠로프 러시아 감독의 <파우스트>를 봤다. 최근에 영화를 좋아하는 모임이 형성되어 여럿이 함께 봤다. 이대 예술영화극장 모모에서 늦은 시각에 모였고 감상 후 카페에서 짧게나마 영화토크를 가졌다. 일단 모두가 입을 모아 한 말은 "예술 영화는 함께 봐야한다"는 거였다. 그렇다. 예술영화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미처 보지 못한 디테일과 생각하지 못했던 이해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상당히 끔찍했다. 파우스트가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에서 갈라진 시신의 배 속 장기가 그대로 눈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약간은 쇼킹한 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화면에 익숙해졌다.

많은 지식을 소유한 파우스트,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연구하지만 정작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식으로 충족되지 않는 영혼에 대한 갈망, 그 갈망은 현실을 초월한 이상에 대한 갈망이다. 하지만 그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 회의한다. 영혼과 이상에 대한 회의는 무엇보다 현실의 각박함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에 허덕이는 파우스트는 결국 전당포를 찾아간다. 자신이 소유한 반지를 맡기고 약간의 돈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허기를 채울 수 있기를 원한다.

전당포 주인으로 등장하는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허기와 갈망을 채워줄 대상으로 마가레트를 소개한다. 빨래터에서 처음 마가레트를 보게 되는 파우스트는 이제 그녀를 갖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결국 혈서로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녀와의 하룻밤을 얻게 된다.

파우스트와 마가레트가 만나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자신의 손에 죽은 마가레트의 오빠 장례식에 참석해 그녀의 손을 건드리며 처음으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파우스트, 이에 응답하는 마가리트의 미세한 손 떨림, 오빠를 죽인 사람이 파우스트인 걸 알고 그의 방에 찾아 온 마가레트와 파우스트가 욕망에 들떠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 (특히 이 장면은 롱테이크와 환하게 밝아지는 명암처리로 두 사람의 심리 상태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강가에 서 있는 마가리트를 파우스트가 뒤에서 다가가 안는 장면, 뒤로 돌아보는 마가리트의 행복에 겨운 얼굴과 이어서 물속으로 함께 빠져드는 장면은 영상미의 절정을 이룬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에서 이 장면들은 유일하게 설레고, 밝고, 행복하고, 아름답다. 이러한 강렬한 대비만으로도 영화는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파우스트>를 예술영화로 승화시킨다.

짧은 하룻밤의 욕정이 채워지고 나서 죽음의 혼령들이 마가레트의 주변을 맴돌고, 그녀 곁을 떠난 파우스트의 방황은 계속된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이끌며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이 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죽는 것이 더 편안한 영혼들과 만나고, 이들은 파우스트를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당기지만 메피스토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그를 구해준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좁은 길'로 인도하지만 그들이 도달하는 곳에 구원은 없다. 오히려 그곳에서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돌로 메피스토를 쳐죽이고 황량한 풍경속으로 길을 떠나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풍경과 그 안의 고독한 인간. 악마까지 죽일 수 있는 파우스트는 구원받지 못하는 오만하고 고독한 21세기의 초인인가?

감독은 20세기의 독재자 히틀러, 레닌, 히로히토에 이어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통해 독재자, 권력자의 초상을 그린 4부작을 완성했다. 인간관계가 무너지고(영화 속에서 가족에 대한 환멸이 종종 언급된다), 신이 없는 세상(파우스트의 조수 바그너는 요한복음의 첫구절에 대해 의문을 품는 파우스트에게 최초에 '나'가 있었다라고 해석한다. 그 외에도 호문쿨르스를 만들어낸 바그너는 자신이 위대하다고, 자신이 파우스트라고 소리친다), 신을 죽인 세상(신에 버금가는 인물인 메피스토마저 죽임을 당한다)에서 고독한 인간의 오만은 극에 달한다. 인간관계에서 위로받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 신이 되고자 하는 오만한 초인의 모습,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21세기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3년 1월 1일 화요일

2013년 새해를 맞으며

새해 첫 날도 벌써 다 지나가고 있다.
올해는 블로그를 좀 더 열심히 쓰자고 결심해본다. 가능하면 매일 들러서 뭔가 흔적을 남겨야지 마음을 먹는다.

올해는 시를 좀 더 읽게 될 것 같다. 작은 글쓰기 모임에서 격주간 모일 때마다 시 한편씩을 외워 오기로 했다.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승희 시인의 <가슴>이란 시를 옮겨본다.

가슴

세상에서 말 한마디 가져가라고
그 말을 고르라고 한다면
'가슴'이라고 고르겠어요.
평생을 가슴으로 살았어요.
가슴이 아팠어요.
가슴이 부풀었어요.
가슴으로 몇 아이 먹였어요.
가슴으로 산 사람
가슴이란 말 가져가요.
그러면 다른 오는 사람
가슴이란 말 들고 와야겠네요.
한 가슴이 가고 또 한 가슴이 오면
세상은 나날이 그렇게 새로운 가슴
에요.
새로운 가슴으로 호흡하고 맥박 쳐요.

'가슴'이란 말이 이렇게 자주 사용되는 시를 읽다보니 이 단어가 갑자기 낯설게 다가온다. '가슴'과 '마음'의 차이는 뭘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여기서 모든 가슴이 마음으로 대체될 순 없는 걸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마음은 가슴의 의미 중 하나에 속한다. 그렇다면 '가슴'이 좀 더 포괄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 몸의 일부를 가리키기도 하니까.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건 머리보다 가슴이 아닌가 싶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건 머리를 통해서보다 가슴을 통해서다. 서로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이해하는 것도 다 가슴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러니 가슴으로 사는 삶이란 삶의 정수를 사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2013년 새해엔 따뜻한 가슴, 뜨거운 가슴, 넓은 가슴으로 살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