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일 신문 커버스토리로 만화가 허영만 씨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만화는 공짜'라는 사회적 인식과 싸우기 위해 허화백이 카카오스토리에 식객을 유료로 연재하게 되었다는 기사였다.
인터뷰 기사와 더불어 실린 다른 기사에서는 한국의 만화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해방 후 대본소(貸本所)라 불린 만화방을 통해 만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만화 전문지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1980년대에 르네상스 시기를 맞은 이야기, 1990년대에 도서대여점의 급증과 일본 만화의 직수입으로 만화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웹툰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신인만화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것 등 흥미로웠다.재밌는 건 만화가의 위상이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만 군사정권 때는 만화책이 '화형식'을 당하고, 직업이 만화가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에서 열심히 만화를 보고 집에까지 빌려가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빠들과 학교도 빼먹고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그 시대에 초등3-4학년들은 75% 정도가 만화방을 찾았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들이 만화와 함께 성장했구나 싶다.
<식객>은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은 만화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12권 정도까지 구입해서 온 가족이 돌려 읽었었다. 애들이 초등, 중등 때였다. 음식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감동적인 서사가 함께 하는 책을 읽고 애들은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체험하고 마음을 살찌우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 시대 왕이 먹었다는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도 함께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다.
최근에 처음으로 만화가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정가네 소사>를 쓴 만화가 정용연 씨를 책모임의 한 회원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만화를 읽고 저자를 초대했었다. 처음 책을 낸 작가와 나눈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만화를 그리는 일이 대단한 노동이란 사실이었다. 3권의 책으로 나온 작품을 만들면서 어깨가 빠지고 팔에 무리가 오는 등, 실로 창작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오롯이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금방 쉽게 읽어낼 수 있는 만화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허영만 화백도 이번에 유료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만화 일생을 걸었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앞선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만화작가로 살아가고 싶어도 너무나 각박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창작품과 문화적 콘텐츠가 생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꽤 성공했다고 하는 그조차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문하생을 먹여 살리며 작업하자면 한 달에 몇 천만원이 필요하고, 벌어서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의 시도가 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문화계의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공짜 좋아하는 우리도 이젠 최소한의 댓가를 치르며 좋은 만화를 볼 수 있는 교양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가들도 노동의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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