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에 노라노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떴다. 노라노, Nora Noh가 영문이름이다. 한국어 이름은 노명자. 17살에 결혼하고 19세에 이혼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7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후 디자이너로 성공해 85세인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코코 샤넬이라는데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에 대해 다큐 영화를 만들었고, 31일 개봉된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 문화사와 여성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펄시스터즈의 판탈롱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신여성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냄으로써 여성이 자신감과 개성을 뽐내며 사회로 진출하는 데 한 몫을 했다고 한다. 85세인데 사진은 그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모랑 함께 내 어린 시절 지방도시에 첫 양장점을 개업하고 몇년간 그곳 어성들의 멋을 이끌어간 어머니는 유학도 갈 수 없었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가는 것조차 이룰 수 없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패션 수업을 받은 언니와 함께 나름 감각을 익혀 옷을 디자인하고 실전을 통해 패션을 배워갔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그 도시에선 알아주는 이름난 양장점으로 자리잡았던 걸 보면 나름 지방의 패션을 주도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회를 위해 지어주신 드레스도 생각나고, 와인색 겨울 코트는 디자인이 꽤 독특해서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기성복 산업이 발전하고 이에 밀려 양장점과 의상실이 사향길로 들어섰다. 이에 발맞춰 어머니는 기성복 브랜드 매장을 여셨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 수제식 방식으로 양장점을 운영하던 여성이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의 생리를 제대로 알고 계시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갑을 관계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동안 성업을 했지만 점점 더 많은 브랜드가 등장하고 사업수완이 별로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빚을 지고 문을 닫았다. 그 이후에도 작은 의상실을 내서 다시 도전하셨지만 결국 힘들게 꾸려가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어딘가 깊숙이 넣어둔 옛 사진을 꺼내 보고 싶다. 그 당시 멋쟁이였던 엄마 모습도 그립고, 초등 6학년 때 직접 지어주신 옷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도 다시 들여다 보고 싶다. 엄마가 다른 환경에 처했더라면,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면 자신의 패션 감각을 제대로 살려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을 좇아가보고 싶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학
<밤이 선생이다>를 낸 황현산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한겨레 신문에 실렸다(8월20일자). 몇 주 전에 이 책을 사놓고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이전에 황현산 교수의 칼럼을 신문에서 가끔 보면서 그때마다 깨달음, 머리를 치는 혹은 가슴을 때리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인터뷰에서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밤은 선생이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밤의 신분을 말해 준다면, '이'라는 주격조사는 전혀 다른 늬앙스를 지닌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밤만이 선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이러한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전공한 불문학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고려대 불문학 교수로 있다가 2010년에 은퇴한 그는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해서 관련된 책과 번역서를 많이 냈다. 이 전공 영역은 어쩌면 '밤'의 상징성과 관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이 문예사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문학화했다면 말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런데 우리는 그 다른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으로써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함이 상징주의의 까다로움이다. 감각이 실제로는 그 다른 세계 자체라는 것이 상징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결합시켜서 그것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게 초현실주의다."
그의 설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들 문학사조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의 세계는 어쩌면 밤의 세계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미학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미학적이든 윤리적이든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정하고 환각으로서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바로 시다. 그런데 그 환각은 환각으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천명령이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찬란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것이 물질과 현실 속에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문인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란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밤은 선생이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밤의 신분을 말해 준다면, '이'라는 주격조사는 전혀 다른 늬앙스를 지닌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밤만이 선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이러한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전공한 불문학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고려대 불문학 교수로 있다가 2010년에 은퇴한 그는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해서 관련된 책과 번역서를 많이 냈다. 이 전공 영역은 어쩌면 '밤'의 상징성과 관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이 문예사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문학화했다면 말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런데 우리는 그 다른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으로써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함이 상징주의의 까다로움이다. 감각이 실제로는 그 다른 세계 자체라는 것이 상징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결합시켜서 그것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게 초현실주의다."
그의 설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들 문학사조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의 세계는 어쩌면 밤의 세계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미학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미학적이든 윤리적이든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정하고 환각으로서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바로 시다. 그런데 그 환각은 환각으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천명령이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찬란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것이 물질과 현실 속에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문인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란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명상과 수행
일주일간 여름 피서를 다녀왔다. 외지의 조용한 마을에서 일상에서 멀어진 생활을 하면서도, 인터넷이 가능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유튜브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 시리즈를 몇차례 봤다. 그곳은 중생의 다양한 고민이 스님의 지혜로운 답을 얻는 수양처였다. 스님의 답은 삶을 꿰뚫고, 상황을 통찰하는 지혜로운 언사였다. 무엇보다 실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했고, 많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지혜를 얻었다. 많은 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갈등과 걱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토요일 한겨레 신문에서 법인 스님은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라고 쓰셨다. 명상이 "번거로운 세속 잡사를 벗어나 잠시의 안온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상이란 무엇보다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잊고 망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생겨나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왜곡하고, 그 왜곡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
법인 스님의 칼럼은 좀 더 정치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반사 역시 결국 명상수행을 통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수행이 따라줘야 함도 깨닫는다.
토요일 한겨레 신문에서 법인 스님은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라고 쓰셨다. 명상이 "번거로운 세속 잡사를 벗어나 잠시의 안온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상이란 무엇보다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잊고 망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생겨나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왜곡하고, 그 왜곡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
법인 스님의 칼럼은 좀 더 정치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반사 역시 결국 명상수행을 통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수행이 따라줘야 함도 깨닫는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가 한겨레 신문에 <인권 오디세이>라는 오피니언 칼럼 시리즈 첫 글에서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썼다.(한겨레 5월29일자)
서양에서 '휴먼 라이츠(human rights)'라는 말이 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인권'은 다양한 표현으로 변화되어왔다. 남성이 인간을 대표하기도 하고 '권리'의 의미도 역사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객관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어떤 상태'라는 의미가 전해져 오다가 근대에 와서 '인간이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라는 주관적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서구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한자어로 번역되다가 일본에서는 1885년 처음으로 '권리'라는 말이 사전에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권리'라는 번역어가 1880년대 후반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역사적으로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인권'이란 말보다 '의권'(義權)이란 말을 제안한다. '정당하고 옳다'라는 의미와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란 뜻이 잘 배합된 말로서 이 말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의도가 수긍이 가지만, - 게다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권리까지 고려한다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의권'으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다양한 그룹의 인간들이 그 차이 때문에 차별받는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권'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이 '의권'보다는 더 구속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인권운동이 여타 인도적 개념과 구분되는 핵심적 이유가 '권리의 객관적 규범과 주관적 요구자격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즉 '권리'에 내포된 두 가지 측면이 여기서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하나는 '정당하고 옳은' 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굴 될 수 있고(아마도 의식의 확장으로), 그리고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 입법화와 제도화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사회의 소수자가 당하는 불이익과 편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다수들이 갖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인권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고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 최근 인권운동사랑방이 엮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도 추천할 만하다. 아니 추천 정도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씩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양에서 '휴먼 라이츠(human rights)'라는 말이 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인권'은 다양한 표현으로 변화되어왔다. 남성이 인간을 대표하기도 하고 '권리'의 의미도 역사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객관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어떤 상태'라는 의미가 전해져 오다가 근대에 와서 '인간이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라는 주관적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서구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한자어로 번역되다가 일본에서는 1885년 처음으로 '권리'라는 말이 사전에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권리'라는 번역어가 1880년대 후반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역사적으로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인권'이란 말보다 '의권'(義權)이란 말을 제안한다. '정당하고 옳다'라는 의미와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란 뜻이 잘 배합된 말로서 이 말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의도가 수긍이 가지만, - 게다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권리까지 고려한다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의권'으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다양한 그룹의 인간들이 그 차이 때문에 차별받는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권'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이 '의권'보다는 더 구속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인권운동이 여타 인도적 개념과 구분되는 핵심적 이유가 '권리의 객관적 규범과 주관적 요구자격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즉 '권리'에 내포된 두 가지 측면이 여기서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하나는 '정당하고 옳은' 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굴 될 수 있고(아마도 의식의 확장으로), 그리고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 입법화와 제도화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사회의 소수자가 당하는 불이익과 편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다수들이 갖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인권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고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 최근 인권운동사랑방이 엮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도 추천할 만하다. 아니 추천 정도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씩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13년 5월 4일 토요일
만화를 다시 보다
한겨레 토요일 신문 커버스토리로 만화가 허영만 씨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만화는 공짜'라는 사회적 인식과 싸우기 위해 허화백이 카카오스토리에 식객을 유료로 연재하게 되었다는 기사였다.
인터뷰 기사와 더불어 실린 다른 기사에서는 한국의 만화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해방 후 대본소(貸本所)라 불린 만화방을 통해 만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만화 전문지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1980년대에 르네상스 시기를 맞은 이야기, 1990년대에 도서대여점의 급증과 일본 만화의 직수입으로 만화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웹툰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신인만화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것 등 흥미로웠다.재밌는 건 만화가의 위상이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만 군사정권 때는 만화책이 '화형식'을 당하고, 직업이 만화가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에서 열심히 만화를 보고 집에까지 빌려가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빠들과 학교도 빼먹고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그 시대에 초등3-4학년들은 75% 정도가 만화방을 찾았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들이 만화와 함께 성장했구나 싶다.
<식객>은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은 만화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12권 정도까지 구입해서 온 가족이 돌려 읽었었다. 애들이 초등, 중등 때였다. 음식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감동적인 서사가 함께 하는 책을 읽고 애들은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체험하고 마음을 살찌우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 시대 왕이 먹었다는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도 함께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다.
최근에 처음으로 만화가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정가네 소사>를 쓴 만화가 정용연 씨를 책모임의 한 회원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만화를 읽고 저자를 초대했었다. 처음 책을 낸 작가와 나눈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만화를 그리는 일이 대단한 노동이란 사실이었다. 3권의 책으로 나온 작품을 만들면서 어깨가 빠지고 팔에 무리가 오는 등, 실로 창작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오롯이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금방 쉽게 읽어낼 수 있는 만화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허영만 화백도 이번에 유료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만화 일생을 걸었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앞선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만화작가로 살아가고 싶어도 너무나 각박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창작품과 문화적 콘텐츠가 생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꽤 성공했다고 하는 그조차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문하생을 먹여 살리며 작업하자면 한 달에 몇 천만원이 필요하고, 벌어서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의 시도가 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문화계의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공짜 좋아하는 우리도 이젠 최소한의 댓가를 치르며 좋은 만화를 볼 수 있는 교양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가들도 노동의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기사와 더불어 실린 다른 기사에서는 한국의 만화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해방 후 대본소(貸本所)라 불린 만화방을 통해 만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만화 전문지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1980년대에 르네상스 시기를 맞은 이야기, 1990년대에 도서대여점의 급증과 일본 만화의 직수입으로 만화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웹툰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신인만화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것 등 흥미로웠다.재밌는 건 만화가의 위상이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만 군사정권 때는 만화책이 '화형식'을 당하고, 직업이 만화가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에서 열심히 만화를 보고 집에까지 빌려가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빠들과 학교도 빼먹고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그 시대에 초등3-4학년들은 75% 정도가 만화방을 찾았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들이 만화와 함께 성장했구나 싶다.
<식객>은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은 만화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12권 정도까지 구입해서 온 가족이 돌려 읽었었다. 애들이 초등, 중등 때였다. 음식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감동적인 서사가 함께 하는 책을 읽고 애들은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체험하고 마음을 살찌우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 시대 왕이 먹었다는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도 함께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다.
최근에 처음으로 만화가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었다. <정가네 소사>를 쓴 만화가 정용연 씨를 책모임의 한 회원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만화를 읽고 저자를 초대했었다. 처음 책을 낸 작가와 나눈 얘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만화를 그리는 일이 대단한 노동이란 사실이었다. 3권의 책으로 나온 작품을 만들면서 어깨가 빠지고 팔에 무리가 오는 등, 실로 창작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오롯이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금방 쉽게 읽어낼 수 있는 만화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허영만 화백도 이번에 유료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만화 일생을 걸었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앞선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만화작가로 살아가고 싶어도 너무나 각박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창작품과 문화적 콘텐츠가 생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꽤 성공했다고 하는 그조차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문하생을 먹여 살리며 작업하자면 한 달에 몇 천만원이 필요하고, 벌어서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의 시도가 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문화계의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공짜 좋아하는 우리도 이젠 최소한의 댓가를 치르며 좋은 만화를 볼 수 있는 교양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가들도 노동의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오병이어의 기적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우연히 보게된 방송에서 법륜 스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렇게 해석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에 학교를 짓고 도와주시는데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걸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먹이기로 했고 1인당 150원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돈 1000원이면 한 아이가 거의 일주일간 영양보충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스님은 빈그릇 운동을 통해 하루에 천 원 저금한 돈을 모금해서 배를 굶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계신다.
우리 돈 천 원은 다른 곳에서는 하루 생활비가 되기도 한다. 근데 그 하루 생활비도 못 버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12억이나 된다고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이 2000명, 3000명을 먹여살리는 기적이었다. 근데 그건 1000원으로 한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매일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처음이었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사실 기적이 아니었다. 그건 '사랑'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일이었다.
빈그릇 운동을 통해 잉여와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파괴를 줄이고, 남을 돕는 운동에 이미 백만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빈그릇처럼 자신을 비움으로써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들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에 학교를 짓고 도와주시는데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걸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먹이기로 했고 1인당 150원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돈 1000원이면 한 아이가 거의 일주일간 영양보충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스님은 빈그릇 운동을 통해 하루에 천 원 저금한 돈을 모금해서 배를 굶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계신다.
우리 돈 천 원은 다른 곳에서는 하루 생활비가 되기도 한다. 근데 그 하루 생활비도 못 버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12억이나 된다고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이 2000명, 3000명을 먹여살리는 기적이었다. 근데 그건 1000원으로 한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매일 바나나 한 개와 빵 한 조각을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처음이었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사실 기적이 아니었다. 그건 '사랑'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일이었다.
빈그릇 운동을 통해 잉여와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파괴를 줄이고, 남을 돕는 운동에 이미 백만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빈그릇처럼 자신을 비움으로써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들이다.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
조선일보에 남진우 평론가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최근에 두 권의 평론집 <나사로의 시학>와 <폐허에서 꿈꾸다>를 12년 만에 냈다고 한다. 각각 시와 소설 비평집이다.
함께 실린 사진 속 풍경,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선 그의 옆 아래 위가 온통 책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책장 풍경. 그렇다. 작가 신경숙 씨의 남편이다. 위층은 남진우 씨의 책, 아래는 신경숙 작가의 책이 꽂혀 있다고. 16단 붙박이 책장이 빼꼭하게 성벽을 이루고 있다.
인터뷰에서 남진우 씨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문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 시각을 변화시키는 거다. 이 관점에서 문학을 능가하는 예술이 있나. 그런 점에서 문학이 가진 힘은 쇠퇴하지 않았다."
여전히 문학의 힘을 믿는 그는 문학의 죽음, 위기에 대해 떠들기 전에 제대로 된 작품을 쓰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를 꼽았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넘어서는 작가가 있다면 그를 욕하라고도 말한다. 둘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그가 새 비평집에서 제안하는 것은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작가 보르헤스가 창안했고, 학자 푸코가 논리화한 개념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상은 단일한 세계가 하나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다양한 세계가 있고 다양한 해석이 병렬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러한 상상력을 구현하는 작가로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을 언급한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남진우의 평론집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가 키워드로 잡아낸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 궁금하다.
최근에 두 권의 평론집 <나사로의 시학>와 <폐허에서 꿈꾸다>를 12년 만에 냈다고 한다. 각각 시와 소설 비평집이다.
함께 실린 사진 속 풍경,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선 그의 옆 아래 위가 온통 책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책장 풍경. 그렇다. 작가 신경숙 씨의 남편이다. 위층은 남진우 씨의 책, 아래는 신경숙 작가의 책이 꽂혀 있다고. 16단 붙박이 책장이 빼꼭하게 성벽을 이루고 있다.
인터뷰에서 남진우 씨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문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 시각을 변화시키는 거다. 이 관점에서 문학을 능가하는 예술이 있나. 그런 점에서 문학이 가진 힘은 쇠퇴하지 않았다."
여전히 문학의 힘을 믿는 그는 문학의 죽음, 위기에 대해 떠들기 전에 제대로 된 작품을 쓰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를 꼽았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넘어서는 작가가 있다면 그를 욕하라고도 말한다. 둘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그가 새 비평집에서 제안하는 것은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작가 보르헤스가 창안했고, 학자 푸코가 논리화한 개념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상은 단일한 세계가 하나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다양한 세계가 있고 다양한 해석이 병렬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러한 상상력을 구현하는 작가로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을 언급한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남진우의 평론집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가 키워드로 잡아낸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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