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190)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저런 행복론에 관한 책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가끔 행복한 순간에 삶의 충일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의 행복을 음미하는 것과 행복을 목적으로 삼아 그것을 좇아 가는 건 다른 얘기다.
재일 교포 강상중 교수의 <살아야 하는 이유>는 행복에 대한 일반적 생각을 뒤집어 버린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단지 결과일 뿐이라고. 삶이 던지는 물음에 응답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행복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생의 물음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들을 잃었던 충격과 슬픔, 지진과 쓰나미, 원전의 파괴로 인한 수 많은 죽음과 황폐화를 목격하면서 우리의 삶이 '비상사태'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개인적 사회적 삶의 위기를 맞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썼고, 그것이 바로 그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고민하는 힘. 속편>이라고 한다. 2008년에 번역 출간된 <고민하는 힘>의 속편으로 나온 책인데 한국어 제목으론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일본어 판에 없는 한국어 서문에서 저자가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쓴 걸 보고 출판사에서 제목을 <살아야 하는 이유>로 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 근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오스트리아의 정신신경과 의사이자 유대인으로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토르 프랑클의 고민과 사유를 통해 21세기 현대의 삶을 조명한다. 근대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문제인 돈, 사랑, 가족, 자아의 돌출, 세계에 대한 절망은 여전히 우리의 문제로 남아 있고, 이를 분석하고 가시화 하면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 아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도'이다. 저자는 인간의 가치가 '창조', '경험', 그리고 '태도'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태도'야 말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라고 말한다. '태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프랑클이 든 예를 인용한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회진 때 의사가 죽기 몇 시간 전에 통증을 완화해 주는 모르핀을 주사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알고 그날 밤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환자는 프랑클에게 '지금 그 주사를 놓아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저 때문에 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프랑클은 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할 데 없이 인간다운 업적'이라며 칭송했습니다."(176)
'태도'는 죽기 바로 전에도 바꿀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는, 그래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쉽지 않지만 '거듭나기'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쩌면 행복한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진리와 방법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1900-2002)의 <진리와 방법>(독일어 제목 Wahrheit und Methode 문학동네 출판)이 국내 첫 완역되었다고 한다.(한겨레 신문 11월 7일자)
20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을 15년 동안 다섯 명의 번역자가 작업하여 이제 번역본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에 1부가 이미 나왔고 이제 12년이 흐르고 2권이 나온 것이다. 1부는 이번에 개정판으로 보완되어 다시 나왔다고 한다.
가다머는 하이데거(1889-1976)의 제자로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자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창시자로 꼽힌다. 1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60살이 되어 펴낸 <진리와 방법>은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천착한다. 그는 플라톤에서 시작해 딜타이에 이르는 서구 근대 학문의 역사와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그의 비판과 성찰은 철학뿐 아니라 미학, 문학,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 경험의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이해의 산물이다. 때문에 가다머의 해석학은 방법론이 아니라 존재론이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그는 역사적 문헌, 사건과 현재의 해석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에 주목했고, 이를 '영향사'라고 일컬었다. 역사적 전통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이 이해의 기초적인 조건이 되지만, 현재의 해석자 스스로도 역사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펼쳐지는 부단한 상호작용이 이해를 확장해간다고 본 것이다. 전통의 전승과 전통과 현재의 소통을 매개하는 '언어'는 가다머에게 특히 중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독일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의 일부를 원서로 읽은 기억이 있다. 문학에서도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점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해가 쉽지 않았었다. 숲에 들어가 나무만 바라보고 숲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책을 다시 훑어라도 보고 싶다. 그때 내가 무엇을 이해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서.
20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을 15년 동안 다섯 명의 번역자가 작업하여 이제 번역본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에 1부가 이미 나왔고 이제 12년이 흐르고 2권이 나온 것이다. 1부는 이번에 개정판으로 보완되어 다시 나왔다고 한다.
가다머는 하이데거(1889-1976)의 제자로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자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창시자로 꼽힌다. 1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60살이 되어 펴낸 <진리와 방법>은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천착한다. 그는 플라톤에서 시작해 딜타이에 이르는 서구 근대 학문의 역사와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그의 비판과 성찰은 철학뿐 아니라 미학, 문학,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 경험의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이해의 산물이다. 때문에 가다머의 해석학은 방법론이 아니라 존재론이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그는 역사적 문헌, 사건과 현재의 해석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에 주목했고, 이를 '영향사'라고 일컬었다. 역사적 전통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이 이해의 기초적인 조건이 되지만, 현재의 해석자 스스로도 역사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펼쳐지는 부단한 상호작용이 이해를 확장해간다고 본 것이다. 전통의 전승과 전통과 현재의 소통을 매개하는 '언어'는 가다머에게 특히 중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독일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의 일부를 원서로 읽은 기억이 있다. 문학에서도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점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해가 쉽지 않았었다. 숲에 들어가 나무만 바라보고 숲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책을 다시 훑어라도 보고 싶다. 그때 내가 무엇을 이해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서.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걷기 예찬
도보여행의 개척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제주도 올레길을 찾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2. 11. 3-4일자 기사)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한 그의 나이는 두 달 후면 75세.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걷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걷기를 좋아하고 제주 올레길도 이미 2코스 걸었다. 시간만 허락하면 동네길 걷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울 도심 걷기, 산길 걷기, 그리고 언젠가는 한비야 씨처럼 한국의 곳곳을 한바퀴 걸어 보고 싶은 희망도 갖고 있다.
올리비에 씨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건 은퇴 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있던 그는 걷기를 시작했다. 산티에고를 걷고, 실크로드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다. 다음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을 걸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인 것은 그가 '쇠이유(Seuil 문턱)'라는 협회를 만들어 비행소년들의 재활을 돕는다는 사실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km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 준다."
이 말을 들으며 마음이 찡해졌다. 공부에 치여, 성적에 밀려 자존감이 없는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머리를 스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긴 걷기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걷기를 통해 마음과 몸이 치유되고, 온전히 자기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걷기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올리비에 씨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한 그의 나이는 두 달 후면 75세.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걷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걷기를 좋아하고 제주 올레길도 이미 2코스 걸었다. 시간만 허락하면 동네길 걷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울 도심 걷기, 산길 걷기, 그리고 언젠가는 한비야 씨처럼 한국의 곳곳을 한바퀴 걸어 보고 싶은 희망도 갖고 있다.
올리비에 씨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건 은퇴 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있던 그는 걷기를 시작했다. 산티에고를 걷고, 실크로드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다. 다음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을 걸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인 것은 그가 '쇠이유(Seuil 문턱)'라는 협회를 만들어 비행소년들의 재활을 돕는다는 사실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km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 준다."
이 말을 들으며 마음이 찡해졌다. 공부에 치여, 성적에 밀려 자존감이 없는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머리를 스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긴 걷기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걷기를 통해 마음과 몸이 치유되고, 온전히 자기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걷기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올리비에 씨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한국 고전 번역
한류가 대중 문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면 이제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세계에 소개하고 공유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 사상과 역사를 소개하는 지난한 작업의 선두에 서 있는 최병헌 교수는 2003년 임진왜란의 원인과 국난 극복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한 유성룡(1542-1607)의 <징비록>을 번역했고 (The Book of Corrections), 2010년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출판했다 (영문제목은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Manual for All Administrators). 이 책들은 미국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교수는 현재 <태조실록>을 번역 중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1월 3-4일자)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1차적으로 <태조실록>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자(漢字)를 하나 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삭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최교수는 번역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로서 얻게되는 기쁨을 밭을 가는 농부의 작업에 비유한다. 한영번역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고전 번역은 그 어려움이 몇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사실 영문학자이다.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문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영문학을 공부한 후 이제 한국의 문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국어 교육의 허점을 꼬집는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그 뿌리 없음과 공허함에 회의적이 되어 다른 길을 밟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학문하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목적'을 안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끌어주는 '깨인' 멘토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하지만 그래도 공부해서 버릴 건 없었던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올해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전은 우리 한국인이 먼저 읽어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과제는 즐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최교수는 현재 <태조실록>을 번역 중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1월 3-4일자)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1차적으로 <태조실록>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자(漢字)를 하나 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삭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최교수는 번역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로서 얻게되는 기쁨을 밭을 가는 농부의 작업에 비유한다. 한영번역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고전 번역은 그 어려움이 몇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사실 영문학자이다.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문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영문학을 공부한 후 이제 한국의 문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국어 교육의 허점을 꼬집는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그 뿌리 없음과 공허함에 회의적이 되어 다른 길을 밟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학문하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목적'을 안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끌어주는 '깨인' 멘토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하지만 그래도 공부해서 버릴 건 없었던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올해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전은 우리 한국인이 먼저 읽어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과제는 즐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묵경
요즘 독서 모임에서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을 시도하는 이 책을 통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서 중국 고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중이다.
전국시대 사상가 중 한 명인 묵자의 사상을 담은 책 <묵자>는 모두 5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중 '경' 상,하와 '경설' 상,하, '대취', '소취' 6편을 가리키는 <묵경>을 한국의 한 연구자가 '주해'를 해서 내놓았다.(한겨레 2012.10.3)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염정삼 연구교수가 묵자의 사상을 주해 작업을 통해 1,2권으로 풀어냈다. 이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고전을 연구 소개하는 방법이 세 가지라는 사실이다.
텍스트가 이어져온 과정을 파고드는 '주해', 텍스트의 내용을 풀이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는 '번역 해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데 텍스트를 활용하는 '재해석'이 그것이다.
묵가 사상은 유가 사상이 중국 문명의 중심축이 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청대 고증학의 발달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청대 학자 필원이 송대 판본을 계승한 '도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그동안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던 <묵경>의 순서를 바로 잡았고 이 작업을 통해 '정본'이라 할 만한 <묵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뒤 이어 청대 말기의 학자 손이양은 <묵자간고>를 통해 이전까지 <묵경>과 관련해 이뤄진 모든 논의와 연구를 망라했다고 한다.
염 교수는 손이양의 작업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그의 주해 작업은 우리 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라고 한다. 고전의 다양한 판본을 수집해 비교하고 여러 판본들의 계열과 관계망을 파악하는 '텍스트 크리틱'(비평)이 1차적이고 핵심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2차적으로는 텍스트가 시대별, 연구자별로 어떻게 풀이되어 있는지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다.
1920년대에 후스(호적), 량치차오(양계초), 등의 학자가 <묵경>에 천착했고, <묵경>은 논리를 바탕에 두고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중국 고대의 과학적 전통을 재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한다.
다음달 모임에서 <묵자>를 다루게 되는데 신영복 선생의 '재해석'적 방법이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물론 <묵경>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인식의 한계가 있겠다. 그래서 고전의 길은 길고도 멀다.
전국시대 사상가 중 한 명인 묵자의 사상을 담은 책 <묵자>는 모두 5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중 '경' 상,하와 '경설' 상,하, '대취', '소취' 6편을 가리키는 <묵경>을 한국의 한 연구자가 '주해'를 해서 내놓았다.(한겨레 2012.10.3)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염정삼 연구교수가 묵자의 사상을 주해 작업을 통해 1,2권으로 풀어냈다. 이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고전을 연구 소개하는 방법이 세 가지라는 사실이다.
텍스트가 이어져온 과정을 파고드는 '주해', 텍스트의 내용을 풀이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는 '번역 해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데 텍스트를 활용하는 '재해석'이 그것이다.
묵가 사상은 유가 사상이 중국 문명의 중심축이 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청대 고증학의 발달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청대 학자 필원이 송대 판본을 계승한 '도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그동안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던 <묵경>의 순서를 바로 잡았고 이 작업을 통해 '정본'이라 할 만한 <묵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뒤 이어 청대 말기의 학자 손이양은 <묵자간고>를 통해 이전까지 <묵경>과 관련해 이뤄진 모든 논의와 연구를 망라했다고 한다.
염 교수는 손이양의 작업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그의 주해 작업은 우리 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라고 한다. 고전의 다양한 판본을 수집해 비교하고 여러 판본들의 계열과 관계망을 파악하는 '텍스트 크리틱'(비평)이 1차적이고 핵심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2차적으로는 텍스트가 시대별, 연구자별로 어떻게 풀이되어 있는지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다.
1920년대에 후스(호적), 량치차오(양계초), 등의 학자가 <묵경>에 천착했고, <묵경>은 논리를 바탕에 두고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중국 고대의 과학적 전통을 재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한다.
다음달 모임에서 <묵자>를 다루게 되는데 신영복 선생의 '재해석'적 방법이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물론 <묵경>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인식의 한계가 있겠다. 그래서 고전의 길은 길고도 멀다.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책은 도끼다
연일 '도끼'가 등장한다. 문정희 시인은 '문학'이 나의 삶을 깨우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고 이제 박웅현은 책이 도끼여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카프카의 세례를 받았다.
박웅현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될 이름이다. 자신의 책 제목 대로 이 책은 내게 그야말로 '도끼'였다.
청중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독회'를 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카피 라이터인 그가 창의력의 원천은 바로 책이라고, 그 중에서도 인문학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독법을 소개한다.
모두 8강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그는 이철수,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지중해 문학(여기엔 김화영, 까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릴케가 등장한다),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그리고 법정 스님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읽고 있는 책, 읽었던 책 등을 불러 낸다. 그의 독법은 정말 도끼로 머리를 치듯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날 흡입했다. 마치 '영혼의 친구'를 만난듯 했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가 자신이 읽은 책을 통해 체험한 삶의 풍요로움이 그대로 내게 전염되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지향점,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했다.
밤 늦게까지 불을 켜고 읽다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 다시 손에 넣어 정오가 다 되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는 다독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일상을 영원한 순간으로 체험하게 하고, 다양한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책들을 읽고, 천천히 여러번 읽으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하라고 한다.
그는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끝에서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같은 연배의 나에게 그의 생각은 마치 내 생각인양 친근하다. 이렇게 책은 도끼가 되기도 하지만 든든한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박웅현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될 이름이다. 자신의 책 제목 대로 이 책은 내게 그야말로 '도끼'였다.
청중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독회'를 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카피 라이터인 그가 창의력의 원천은 바로 책이라고, 그 중에서도 인문학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독법을 소개한다.
모두 8강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그는 이철수,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지중해 문학(여기엔 김화영, 까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릴케가 등장한다),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그리고 법정 스님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읽고 있는 책, 읽었던 책 등을 불러 낸다. 그의 독법은 정말 도끼로 머리를 치듯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날 흡입했다. 마치 '영혼의 친구'를 만난듯 했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가 자신이 읽은 책을 통해 체험한 삶의 풍요로움이 그대로 내게 전염되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지향점,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했다.
밤 늦게까지 불을 켜고 읽다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 다시 손에 넣어 정오가 다 되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는 다독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일상을 영원한 순간으로 체험하게 하고, 다양한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책들을 읽고, 천천히 여러번 읽으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하라고 한다.
그는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끝에서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같은 연배의 나에게 그의 생각은 마치 내 생각인양 친근하다. 이렇게 책은 도끼가 되기도 하지만 든든한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몇 주 전에 광화문 교보서점에서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집에 데려왔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 먼저 읽어내야 하는 책들 때문에 그녀의 책은 다른 책에 묻혀 실종되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리고 조금은 한가한 주말, 시간을 내서 읽어보았다.
카프카의 말을 제목 속에 인용하는 그녀의 책은 내게 몇 번의 전율과 가슴뭉클함을 전달하면서 내 삶을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도끼처럼 내 삶을 깨우는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다. 시집을 산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의 시를 접하게 되었는지 그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몇 편의 시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이 책에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이 모여 있다. 고독과 자유를 추구하며 세상을 떠도는 시인은 기억과 일상의 성찰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문학과 시가 그녀 삶의 전부이길 바라는 그녀는 스스로 원한 '왕따'의 삶을 살지만 그 삶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는 그 삶이 부럽다. 위로가 되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다양한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독자의 눈을 더욱 맑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책장 한 켠에 꽂아 두고 시집처럼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카프카의 말을 제목 속에 인용하는 그녀의 책은 내게 몇 번의 전율과 가슴뭉클함을 전달하면서 내 삶을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도끼처럼 내 삶을 깨우는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다. 시집을 산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의 시를 접하게 되었는지 그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몇 편의 시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이 책에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이 모여 있다. 고독과 자유를 추구하며 세상을 떠도는 시인은 기억과 일상의 성찰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문학과 시가 그녀 삶의 전부이길 바라는 그녀는 스스로 원한 '왕따'의 삶을 살지만 그 삶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는 그 삶이 부럽다. 위로가 되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다양한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독자의 눈을 더욱 맑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책장 한 켠에 꽂아 두고 시집처럼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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