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6일 화요일

한국 고전 번역

한류가 대중 문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면 이제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세계에 소개하고 공유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 사상과 역사를 소개하는 지난한 작업의 선두에 서 있는 최병헌 교수는 2003년 임진왜란의 원인과 국난 극복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한 유성룡(1542-1607)의  <징비록>을 번역했고 (The Book of Corrections), 2010년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출판했다 (영문제목은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Manual for All Administrators). 이 책들은 미국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교수는 현재 <태조실록>을 번역 중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1월 3-4일자)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1차적으로 <태조실록>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자(漢字)를 하나 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삭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최교수는 번역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로서 얻게되는 기쁨을 밭을 가는 농부의 작업에 비유한다. 한영번역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고전 번역은 그 어려움이 몇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사실 영문학자이다.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문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영문학을 공부한 후 이제 한국의 문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국어 교육의 허점을 꼬집는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그 뿌리 없음과 공허함에 회의적이 되어 다른 길을 밟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학문하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목적'을 안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끌어주는 '깨인' 멘토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하지만 그래도 공부해서 버릴 건 없었던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올해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전은 우리 한국인이 먼저 읽어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과제는 즐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