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대책없이 해피엔딩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란 부제가 달린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김연수의 책은 왠만하면, 적어도 제목은 대충 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 이런 책도 있었네 하며 궁금해서 빌려왔다. 이미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고 표지 그림도 황당무계, 꼭 내 마음에 들었다.

씨네21에 두 친구(초등6부터 친구였다니 참 오랜 친구)가 돌아가며 대꾸하며 영화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2010년에 책으로 냈다. 워낙 김연수 팬이기도 하고, 김중혁은 예감에 재미난 작가일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가 이렇게 두 사람을 한번에 낚았다. 김중혁의 유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도 짓고, 소리내어 웃기도 하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영화를 참 등지고 살았구나, 반성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반성할 일은 아니다. 살다보면 상황이 그러저러해서 영화를 멀리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유학기간 동안 한때 열심히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영화 소개글을 영화잡지에 써서 보내기도 했었다. 베를린과 뮌휀 영화제에서 하루동안 몇 편의 영화를 줄기차게 보면서도 전혀 피곤해 하지도 머리가 무거워지지도 않았었다. 커다란 화면에서 <피아노>를 보며 전율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한동안 영화에 몰입했지만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된 건 아니었고 어쩌다 일을 맡아서) 언젠가부터 영화는 내 삶에서 멀어졌다.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생활에 뿌리를 내리기위해 아둥바둥하는 동안 도대체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나버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모든 건 때가 있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겠지 희망하면서. 그런데 이렇게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희망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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