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도끼'가 등장한다. 문정희 시인은 '문학'이 나의 삶을 깨우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고 이제 박웅현은 책이 도끼여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카프카의 세례를 받았다.
박웅현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될 이름이다. 자신의 책 제목 대로 이 책은 내게 그야말로 '도끼'였다.
청중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독회'를 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카피 라이터인 그가 창의력의 원천은 바로 책이라고, 그 중에서도 인문학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독법을 소개한다.
모두 8강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그는 이철수,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지중해 문학(여기엔 김화영, 까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릴케가 등장한다),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그리고 법정 스님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읽고 있는 책, 읽었던 책 등을 불러 낸다. 그의 독법은 정말 도끼로 머리를 치듯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날 흡입했다. 마치 '영혼의 친구'를 만난듯 했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가 자신이 읽은 책을 통해 체험한 삶의 풍요로움이 그대로 내게 전염되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지향점,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했다.
밤 늦게까지 불을 켜고 읽다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 다시 손에 넣어 정오가 다 되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는 다독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일상을 영원한 순간으로 체험하게 하고, 다양한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책들을 읽고, 천천히 여러번 읽으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하라고 한다.
그는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끝에서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같은 연배의 나에게 그의 생각은 마치 내 생각인양 친근하다. 이렇게 책은 도끼가 되기도 하지만 든든한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몇 주 전에 광화문 교보서점에서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집에 데려왔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 먼저 읽어내야 하는 책들 때문에 그녀의 책은 다른 책에 묻혀 실종되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리고 조금은 한가한 주말, 시간을 내서 읽어보았다.
카프카의 말을 제목 속에 인용하는 그녀의 책은 내게 몇 번의 전율과 가슴뭉클함을 전달하면서 내 삶을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도끼처럼 내 삶을 깨우는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다. 시집을 산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의 시를 접하게 되었는지 그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몇 편의 시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이 책에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이 모여 있다. 고독과 자유를 추구하며 세상을 떠도는 시인은 기억과 일상의 성찰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문학과 시가 그녀 삶의 전부이길 바라는 그녀는 스스로 원한 '왕따'의 삶을 살지만 그 삶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는 그 삶이 부럽다. 위로가 되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다양한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독자의 눈을 더욱 맑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책장 한 켠에 꽂아 두고 시집처럼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카프카의 말을 제목 속에 인용하는 그녀의 책은 내게 몇 번의 전율과 가슴뭉클함을 전달하면서 내 삶을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도끼처럼 내 삶을 깨우는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다. 시집을 산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의 시를 접하게 되었는지 그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몇 편의 시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이 책에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이 모여 있다. 고독과 자유를 추구하며 세상을 떠도는 시인은 기억과 일상의 성찰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문학과 시가 그녀 삶의 전부이길 바라는 그녀는 스스로 원한 '왕따'의 삶을 살지만 그 삶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는 그 삶이 부럽다. 위로가 되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다양한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독자의 눈을 더욱 맑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책장 한 켠에 꽂아 두고 시집처럼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대책없이 해피엔딩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란 부제가 달린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김연수의 책은 왠만하면, 적어도 제목은 대충 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 이런 책도 있었네 하며 궁금해서 빌려왔다. 이미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고 표지 그림도 황당무계, 꼭 내 마음에 들었다.
씨네21에 두 친구(초등6부터 친구였다니 참 오랜 친구)가 돌아가며 대꾸하며 영화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2010년에 책으로 냈다. 워낙 김연수 팬이기도 하고, 김중혁은 예감에 재미난 작가일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가 이렇게 두 사람을 한번에 낚았다. 김중혁의 유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도 짓고, 소리내어 웃기도 하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영화를 참 등지고 살았구나, 반성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반성할 일은 아니다. 살다보면 상황이 그러저러해서 영화를 멀리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유학기간 동안 한때 열심히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영화 소개글을 영화잡지에 써서 보내기도 했었다. 베를린과 뮌휀 영화제에서 하루동안 몇 편의 영화를 줄기차게 보면서도 전혀 피곤해 하지도 머리가 무거워지지도 않았었다. 커다란 화면에서 <피아노>를 보며 전율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한동안 영화에 몰입했지만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된 건 아니었고 어쩌다 일을 맡아서) 언젠가부터 영화는 내 삶에서 멀어졌다.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생활에 뿌리를 내리기위해 아둥바둥하는 동안 도대체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나버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모든 건 때가 있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겠지 희망하면서. 그런데 이렇게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희망해도 되는 걸까.
씨네21에 두 친구(초등6부터 친구였다니 참 오랜 친구)가 돌아가며 대꾸하며 영화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2010년에 책으로 냈다. 워낙 김연수 팬이기도 하고, 김중혁은 예감에 재미난 작가일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가 이렇게 두 사람을 한번에 낚았다. 김중혁의 유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도 짓고, 소리내어 웃기도 하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영화를 참 등지고 살았구나, 반성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반성할 일은 아니다. 살다보면 상황이 그러저러해서 영화를 멀리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유학기간 동안 한때 열심히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영화 소개글을 영화잡지에 써서 보내기도 했었다. 베를린과 뮌휀 영화제에서 하루동안 몇 편의 영화를 줄기차게 보면서도 전혀 피곤해 하지도 머리가 무거워지지도 않았었다. 커다란 화면에서 <피아노>를 보며 전율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한동안 영화에 몰입했지만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된 건 아니었고 어쩌다 일을 맡아서) 언젠가부터 영화는 내 삶에서 멀어졌다.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생활에 뿌리를 내리기위해 아둥바둥하는 동안 도대체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나버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모든 건 때가 있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겠지 희망하면서. 그런데 이렇게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희망해도 되는 걸까.
2012년 9월 9일 일요일
나, 김점선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려온 김점선의 <10cm 예술>을 읽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김점선의 그림은 이미 보아서 알고 있었고 그녀가 고 장영희 교수, 이해인 수녀, 박완서 선생 등과 친한 사이였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그림이 주는 천진성과 장식적인 느낌 때문에 진지하게 그녀의 예술을 평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서야, 그녀가 죽고 3주기가 되고 나서야 그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녀의 빈 자리를 아쉬어 하면서...
<10cm 예술>을 소장하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이미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책들은 다행이도 출판된 게 많았다. 그 중 <나, 김점선>은 깊은샘에서 1998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4년에 개정판이 나온 후 2007년에 2쇄를 찍었다.
책의 서두에 소설가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최윤은 김점선을 '점선을 닮은 사람'이라고 칭한다. "나타난 것과 숨은 것의 비율이 일정한 점선", "본질에 직접 당도할 줄 아는" 점선에 대해 말한다.
그녀가 쓴 글들을 읽으며 (이 책은 그녀의 어린시절의 기억에서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겪은 일상의 면면을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참으로 직설적으로, 담백하게, 본질에 다다르며 생을 살았다는 걸 느낀다.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했고, 도발적으로 결혼한 한 남자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엄마의 마음을 지녔던 그녀. 독창적인 그녀의 사고는 모든 관습과 허위를 깨부수며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넉넉한 사랑으로 세계를 자신 속에 품었었다.
그녀는 어떤 일에 한 번 몰두하면 뭔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무궁화꽃이 촌스럽다고 하는 말을 듣고 왜 그런 꽃이 우리나라의 국화가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꽃을 관찰한다. 마당에 무궁화 꽃을 심고 물을 주면서 관찰한다. 꽃이 벌레에 먹혀 줄기와 가지만 남긴 채 꽂꽂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걸 보고 계속 물을 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궁화가 다시 활짝 꽃을 피운 걸 보고 그 이유를 알아내는 그녀. "싱싱하고 건강한 아름다움, 숨겨진 듯한, 얼핏 눈에 띄지 않는 모습, 그들은[조상]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원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면서 여자들이 '무궁화만큼만' 아름다우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한 '문화고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적지를 방문했다가 너무나 몰상식한 행동으로 관람객을 아연케 한 관리인을 경험한 후에 그녀는 문화재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시험을 쳐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문화고시를 치르고 당당하게 현장에서 근무하고 대우받으며 "난 첨성대에서 10년 근무했다"는 사실을 이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길 원한다.
"첨성대에 관한 한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깊고 다양한 체험을 한 사람은 없다, 뭐 이런 자랑을 하는 젊으니들이 우글우글 나와야 한다. 나는 첨성대에 대해서 열 시간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뭐 이런 자랑이 쉽게 들려야 한다. 한여름 밤의 첨성대! 눈 덮인 첨성대 위에서 빛나는 견우성! 아침 햇살이 만드는 첨성대, 그림자의 계절별 변화에 대한 신화적인 고찰, 뭐 이런 제목의 논문들이 막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일 년이면 분황사에 관한 글만도 수천 점이 나와야 한다. 태종무열왕능을 바라보면서 신혼 첫밤을 보내고 또한 임종을 편안히 맞는 그런 인생도 수없이 나타나야 한다. 샤갈보다 더 오래 그림 그린 화가 김점선! 물 속의 태종무열왕능을 바라보면서 102세에 임종하다, 뭐 이런 기사가 아주 당연히 매일 신문에 실려야 한다."
그녀는 이처럼 독창적인 생각을 발랄하게 떠들다 갔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120세의 절반을 조금 더 살고.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9년 63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그녀가 좀 더 살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즐거움을 주었더라면... 이렇게 뒤늦게 그녀의 부재를 아쉬어한다.
김점선의 그림은 이미 보아서 알고 있었고 그녀가 고 장영희 교수, 이해인 수녀, 박완서 선생 등과 친한 사이였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그림이 주는 천진성과 장식적인 느낌 때문에 진지하게 그녀의 예술을 평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서야, 그녀가 죽고 3주기가 되고 나서야 그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녀의 빈 자리를 아쉬어 하면서...
<10cm 예술>을 소장하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이미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책들은 다행이도 출판된 게 많았다. 그 중 <나, 김점선>은 깊은샘에서 1998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4년에 개정판이 나온 후 2007년에 2쇄를 찍었다.
책의 서두에 소설가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최윤은 김점선을 '점선을 닮은 사람'이라고 칭한다. "나타난 것과 숨은 것의 비율이 일정한 점선", "본질에 직접 당도할 줄 아는" 점선에 대해 말한다.
그녀가 쓴 글들을 읽으며 (이 책은 그녀의 어린시절의 기억에서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겪은 일상의 면면을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참으로 직설적으로, 담백하게, 본질에 다다르며 생을 살았다는 걸 느낀다.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했고, 도발적으로 결혼한 한 남자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엄마의 마음을 지녔던 그녀. 독창적인 그녀의 사고는 모든 관습과 허위를 깨부수며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넉넉한 사랑으로 세계를 자신 속에 품었었다.
그녀는 어떤 일에 한 번 몰두하면 뭔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무궁화꽃이 촌스럽다고 하는 말을 듣고 왜 그런 꽃이 우리나라의 국화가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꽃을 관찰한다. 마당에 무궁화 꽃을 심고 물을 주면서 관찰한다. 꽃이 벌레에 먹혀 줄기와 가지만 남긴 채 꽂꽂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걸 보고 계속 물을 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궁화가 다시 활짝 꽃을 피운 걸 보고 그 이유를 알아내는 그녀. "싱싱하고 건강한 아름다움, 숨겨진 듯한, 얼핏 눈에 띄지 않는 모습, 그들은[조상]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원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면서 여자들이 '무궁화만큼만' 아름다우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한 '문화고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적지를 방문했다가 너무나 몰상식한 행동으로 관람객을 아연케 한 관리인을 경험한 후에 그녀는 문화재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시험을 쳐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문화고시를 치르고 당당하게 현장에서 근무하고 대우받으며 "난 첨성대에서 10년 근무했다"는 사실을 이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길 원한다.
"첨성대에 관한 한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깊고 다양한 체험을 한 사람은 없다, 뭐 이런 자랑을 하는 젊으니들이 우글우글 나와야 한다. 나는 첨성대에 대해서 열 시간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뭐 이런 자랑이 쉽게 들려야 한다. 한여름 밤의 첨성대! 눈 덮인 첨성대 위에서 빛나는 견우성! 아침 햇살이 만드는 첨성대, 그림자의 계절별 변화에 대한 신화적인 고찰, 뭐 이런 제목의 논문들이 막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일 년이면 분황사에 관한 글만도 수천 점이 나와야 한다. 태종무열왕능을 바라보면서 신혼 첫밤을 보내고 또한 임종을 편안히 맞는 그런 인생도 수없이 나타나야 한다. 샤갈보다 더 오래 그림 그린 화가 김점선! 물 속의 태종무열왕능을 바라보면서 102세에 임종하다, 뭐 이런 기사가 아주 당연히 매일 신문에 실려야 한다."
그녀는 이처럼 독창적인 생각을 발랄하게 떠들다 갔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120세의 절반을 조금 더 살고.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9년 63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그녀가 좀 더 살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즐거움을 주었더라면... 이렇게 뒤늦게 그녀의 부재를 아쉬어한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반공주의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20년 동안 감옥에서 자신의 청춘과 중년 시기를 보내야했던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숙대에서 강의하다가 체포되고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을 살다가 감형되어 1988년에 출소하셨다.
신영복 씨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생겨난 건 그의 글 "청구회 추억"을 어느 수필집에서 읽고 나서였다. 숙대 교수 시절 서오릉으로 동료들과 소풍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그가 그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참 특별했다. 아이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고, 대화를 이어지게 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하는 그의 배려와 치밀함이 놀라웠다. 그의 접근 방식은 통했고 아이들과 그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지속적으로 만난다.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 미래를 위한 작은 대책으로 애들이 자립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안도 생각해내고, 이들의 관계는 삶의 스승과 제자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스승은 잡혀가고 만남은 기약없어진다. 공안당국은 청구회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만났던 것까지 간첩조직으로 추궁하고 선생은 이 어이없는 죄목에 그저 말을 잃을 뿐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의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선생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엽서를 수록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동생, 형수와 계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의 삶에 대한 염려와 충고가 있고, 감방 생활의 경험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성찰, 자기반성, 더나은 삶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작은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깊은 사색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통찰력,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선생의 지적 힘이 놀랍고 투철한 성찰적 삶이 커다란 본보기가 된다.
'관계가 존재'라는 화두로 21세기의 삶이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그의 사상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고독한 섬이 되어가는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공동체와의 연결이 필요하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삶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됨을 자각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내 삶의 각성제가 되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숙대에서 강의하다가 체포되고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을 살다가 감형되어 1988년에 출소하셨다.
신영복 씨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생겨난 건 그의 글 "청구회 추억"을 어느 수필집에서 읽고 나서였다. 숙대 교수 시절 서오릉으로 동료들과 소풍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그가 그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참 특별했다. 아이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고, 대화를 이어지게 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하는 그의 배려와 치밀함이 놀라웠다. 그의 접근 방식은 통했고 아이들과 그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지속적으로 만난다.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 미래를 위한 작은 대책으로 애들이 자립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안도 생각해내고, 이들의 관계는 삶의 스승과 제자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스승은 잡혀가고 만남은 기약없어진다. 공안당국은 청구회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만났던 것까지 간첩조직으로 추궁하고 선생은 이 어이없는 죄목에 그저 말을 잃을 뿐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의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선생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엽서를 수록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동생, 형수와 계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의 삶에 대한 염려와 충고가 있고, 감방 생활의 경험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성찰, 자기반성, 더나은 삶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작은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깊은 사색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통찰력,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선생의 지적 힘이 놀랍고 투철한 성찰적 삶이 커다란 본보기가 된다.
'관계가 존재'라는 화두로 21세기의 삶이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그의 사상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고독한 섬이 되어가는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공동체와의 연결이 필요하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삶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됨을 자각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내 삶의 각성제가 되었다.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최고의 교사
EBS 방송팀이 만든 <최고의 교사>(2012 문학동네)를 읽었다.
방송을 보지는 못했고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방송 다큐멘타리는 "위축된 공교육의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교사들을 응원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교육이 붕괴되고 교육이 사교육장으로 넘어가버린 현실에서 여전히 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는 공교육의 교사들. 그들 중 몇 몇이 대표주자로 선정되었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교실에서 나름대로 계발한 교수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국, 영, 수, 역사, 지리, 음악, 도덕, 통합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을 밀착 취재하여 그들의 생각과 열정, 그리고 수업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기대가 컸고 첫 주자인 국어교사 송승훈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내 학창시절에도 이런 선생님이 지도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러워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매 장마다 붙어 있는 교사의 공부 팁과 대학을 간 제자들의 스승 예찬의 글이 어딘지 불편했다. 그래서 이 책도 결국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해서 대학에 잘 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학습법에 관한 책이라는 인상이 짙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기에 소개된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수업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업하는 교사들이 많아지면 공교육도 살아나고 아이들도 입시 위주의 공부가 아닌 평생 살아나가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싹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교육 체제에서 과연 이들의 노력이 희귀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공교육 현장에 새로운 모델로서 바람을 일으키며 확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심기가 불편한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고, 또 다른 학습법 책일 뿐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있다. 출판사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책을 편집한 의도를 감지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이, 아니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교사는 어떻게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이 보여준 건 확실하다. 교사의 자질로서 필요한 건 학생들에 대한 애정, 관심,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교수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교수법의 의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스킬이 아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어찌보면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표현된 소통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법에 대한 고민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없고 사랑의 표시만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마음 속에 아무리 큰 사랑이 들끓어도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고 전달하지 못하면 누가 그 사랑을 알 수 있을까.
교사의 사랑도 결국은 교수법을 통해 발현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방송을 보지는 못했고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방송 다큐멘타리는 "위축된 공교육의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교사들을 응원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교육이 붕괴되고 교육이 사교육장으로 넘어가버린 현실에서 여전히 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는 공교육의 교사들. 그들 중 몇 몇이 대표주자로 선정되었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교실에서 나름대로 계발한 교수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국, 영, 수, 역사, 지리, 음악, 도덕, 통합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을 밀착 취재하여 그들의 생각과 열정, 그리고 수업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기대가 컸고 첫 주자인 국어교사 송승훈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내 학창시절에도 이런 선생님이 지도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러워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매 장마다 붙어 있는 교사의 공부 팁과 대학을 간 제자들의 스승 예찬의 글이 어딘지 불편했다. 그래서 이 책도 결국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해서 대학에 잘 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학습법에 관한 책이라는 인상이 짙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기에 소개된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수업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업하는 교사들이 많아지면 공교육도 살아나고 아이들도 입시 위주의 공부가 아닌 평생 살아나가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싹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교육 체제에서 과연 이들의 노력이 희귀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공교육 현장에 새로운 모델로서 바람을 일으키며 확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심기가 불편한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고, 또 다른 학습법 책일 뿐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있다. 출판사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책을 편집한 의도를 감지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이, 아니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교사는 어떻게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이 보여준 건 확실하다. 교사의 자질로서 필요한 건 학생들에 대한 애정, 관심,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교수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교수법의 의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스킬이 아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어찌보면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표현된 소통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법에 대한 고민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없고 사랑의 표시만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마음 속에 아무리 큰 사랑이 들끓어도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고 전달하지 못하면 누가 그 사랑을 알 수 있을까.
교사의 사랑도 결국은 교수법을 통해 발현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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