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사상에서 인간의 감정은 7가지로 구별된다. '칠정'이 그것인데 <예기> '예운' 편에 이렇게 나와 있다.
"무엇을 인간의 정이라고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喜怒愛懼哀惡欲)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다."
기쁨, 분노, 사랑, 두려움, 슬픔, 싫어함, 욕구가 칠정이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하며, 발동해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며, 화는 천하의 보편적인 길이다."
사단칠정에서 사단은 본성이 나타난 것으로 순수하게 선한 정이고, 칠정은 아직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정감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칠정이 발동해 객관적인 상황에 맞으면 선이고, 어긋나면 악이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위의 네 가지, 일곱 가지 이상으로 복잡미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고통, 억울함, 서운함, 등 좀 더 세부적인 감정들이 즐비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도 있고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도 존재한다.
사실 어찌보면 인간의 삶은 많은 부분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 어떻게 잘 표현되고 조절되고 분출되느냐에 따라 사는 게 순탄할 수도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교에서는 감정이 발동했을 때 그것이 적절한 경우에는 그것이 조화롭다는 의미에서 和 라고 하면서 선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상황에 맞게 감정이 표출되면 적절하고 자신과 세계와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식이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웃는 것은 이 조화가 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악이 된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한 번 관찰해 보고 싶다.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 그래서 내 정신 건강에 좋은 건지.
요즘은 '감정 코칭'이란 말을 많이 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라는 의미로 특히 부모교육에서도 강조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아이를 대하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감정이 앞서면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큰소리도 대들 때, 그저 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정말 바람직할까? 엄마도 감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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