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더렐(1910-1990)은 세계화와 다민족적 정체성의 시대에 삶의 수수께끼를 가장 먼저 탐구한 작가로 평가된다.(뉴스위크, 2012.8.29)
그의 걸작 <알렉산드리아 4중주>(The Alexandria Quartet)는 1957~1960년에 출간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중간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연작 소설 시리즈며 정치 스릴러다. 존 그리셤의 소설을 제임스 조이스가 다시 썼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평가된다.
한편으로는 인종, 종파, 언어가 한 공간에 채워졌지만 그 결과 극도로 분열된 세계에서 사랑과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소설은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많은 현실이 있는데" 어떻게 단 하나의 진실을 구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캐릭터의 관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고 한 캐릭터 조차도 다중인격의 프리즘을 통해 관점은 사분오열된다.
데렐은 인도에서 3세대 앵글로-아이리시 식민지 주민으로 성장했고 이러한 개인적 성장 배경은 22세 때 "나는 인도인의 가슴과 영국인의 피부를 가졌다"라는 깨달음을 갖게 만든다. 동시에 일종의 심리적 위기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영국 생활을 치통처럼 견디지 못해 떠돌아 다니며 자신을 '직업적 난민'으로 이해한 더렐은 영국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작품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실험적'이라는 악평을 들었다.
세계화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적어도 두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겪게될 심리적 방황과 갈등, 정체성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소설이 한국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물론 이미 히트를 친 청소년 소설 <완득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여전히 다문화 아이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다문화 공동체의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무늬를 그려내는 작품은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다문화 사회를 주제로 하는 경우 이민결혼자를 소재로 한 <라오 라오가 좋아>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지만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주요한 이슈를 작품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앞으로 좀 더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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