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책읽기 모임에서 한국의 고전을 읽기로 해서 조선시대 사상가들의 글을 조금씩 읽고 있다. 아직은 입문 단계여서 쉽게 해석하거나 풀어 쓴 책들을 선정해서 읽고 있다.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등등이 목록에 올라와 있다. 그들의 사상을 접하면서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고 있던 중에 영산대 배병삼 교수의 글을 읽었다.
한국의 지성인들과 글쓰기를 주제로 대담한 내용이나 이들의 글을 모아 엮은 <글쓰기의 최소원칙>((경희대학교출판국 2008)에서 배병삼 교수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무엇보다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그런 후에 구절, 문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로서 그는 <맹자>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나오는 사랑의 의미가 각각 다른 단어로 쓰여 있고, 따라서 그 사랑의 의미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 '차등적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맹자의 글을 인용해보자.
"군자란 사물(物)에 대해선 애(愛)하되 인(仁)하지 않으며, 백성(民)에 대해선 인(仁)하되 친(親)하지 않는다. 어버이(親)에 대해선 친(親)하며, 백성에 대해선 인(仁)하며, 사물에겐 애(愛)하느니라."
여기서 인, 애, 친, 은 모두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맹자는 이 단어를 각기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부모에게 쓰는 사랑인 친(親)은 가장 고급하고, 백성들에게 쓰는 사랑인 인(仁)은 그 다음이고, 사물에 대해 베푸는 사랑인 애(愛)는 가장 하천한 사랑이라는 말이다. 이를 그냥 '사랑'으로 번역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없고 유교 사상이 가지고 있는 차별적 사랑, 사랑을 등급으로 나누는 철학적 특성을 간과하게 된다고 한다.
물건에 대한 사랑은 아끼는 정도이고 백성에 대한 사랑인 인은 관계를 맺는, 소통하는 사랑이어서 일방적이지 않고, 어버이에 대한 사랑은 전폭적인 사랑, 절대적 사랑이라고 본다.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고전은 한문으로 쓰여져 있으니 원서를 보면서 한자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현대식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 의미의 일부를 잃어버리게 되는 건 모든 번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고전을 공부할수록 한문을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제 그 절실함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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