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기를 거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삶이 벅차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질풍 노도의 파도에 나 역시 파도타기를 하는 느낌이 들고, 걱정, 불안, 절망, 두려움이 교차되는 순간들이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느낌있게 다가오고, 자식 없이 자유로운 친구들을 보면 잠시 부럽기도 하다.
그러다가 서영은의 짧은 글 '결실'을 읽었다. 그녀의 책 <일곱 빛깔의 위안>에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인생의 밭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결실에 대해 얘기한다.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어 땀과 노력의 결실인 열매와 곡식을 얻게 되는 농사와 달리 인생의 밭에서 얻는 결실은 책임감이라고 한다. 인생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인생 농사는 관계를 심고 거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관계의 결실은 책임감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결혼을 한다는 건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의 씨를 뿌리는 것이고 자식을 갖는 것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씨의 결실은 책임감으로 완성된다는 것.
파트너를 끝까지 책임지고, 부모를 책임지고, 자식을 책임지는 일, 그것이 '관계'의 결실이고 인생 수확기의 결실이 된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가령 시부모나 남편이 중병이 들었을 때, 며느리나 아내의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들은 그 상황을 전적으로 떠맡을 수밖에 없다. 힘겨움에도 그 상황을 온전히 떠맡는 것이 관계의 거둠이고 결실이다. 여기에는 농부들처럼 지금까지 땀과 노력을 바친 만큼의 결과를 앉아서 따먹는 식의 손에 쥐는 열매가 없다. 그러나 그 거둠이 책임감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자기를 태워 빛을 발하는 것이고,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더 많은 알곡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우리가 결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즉 직업적 성공이나 부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보상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책임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고 또 다시 '관계'를 맺고 책임을 다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부모는 먼저 난 사람들로서 나중에 난 사람을 위해 책임을 지고, 나중에 난 사람은 또 다시 그 이후에 오는 사람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인생을 공동체 전체의 연속성 속에서 바라본다.
"나의 죽음이나 변용은 전체성 속에서 결실로 거두어지게 된다. 먼저 난 사람들이 있기에 나중 난 사람이었던 우리가 어느새 먼저 난 사람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와 있다. 위로도 아래로도 책임질 관계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그 책임을 얼마나 성심껏 치러 내느냐에 따른 열매는 나중 오는 사람들 속에서 거둠의 넓이나 깊이로서 감지될 것이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걱정보다 내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겠다. 자식이 나중에 자신의 삶에서 책임 질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가 맡은 책임이 아닐까 싶다. 그건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자신과 관계 맺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런 생각들을 해보면서 잠시 위안을 얻는다. 무엇보다 책임이란 고통과 힘겨움이 따르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는 힘듬이 자연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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