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1900-2002)의 <진리와 방법>(독일어 제목 Wahrheit und Methode 문학동네 출판)이 국내 첫 완역되었다고 한다.(한겨레 신문 11월 7일자)
20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을 15년 동안 다섯 명의 번역자가 작업하여 이제 번역본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에 1부가 이미 나왔고 이제 12년이 흐르고 2권이 나온 것이다. 1부는 이번에 개정판으로 보완되어 다시 나왔다고 한다.
가다머는 하이데거(1889-1976)의 제자로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자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창시자로 꼽힌다. 1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60살이 되어 펴낸 <진리와 방법>은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천착한다. 그는 플라톤에서 시작해 딜타이에 이르는 서구 근대 학문의 역사와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그의 비판과 성찰은 철학뿐 아니라 미학, 문학,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 경험의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이해의 산물이다. 때문에 가다머의 해석학은 방법론이 아니라 존재론이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그는 역사적 문헌, 사건과 현재의 해석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에 주목했고, 이를 '영향사'라고 일컬었다. 역사적 전통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이 이해의 기초적인 조건이 되지만, 현재의 해석자 스스로도 역사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펼쳐지는 부단한 상호작용이 이해를 확장해간다고 본 것이다. 전통의 전승과 전통과 현재의 소통을 매개하는 '언어'는 가다머에게 특히 중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독일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의 일부를 원서로 읽은 기억이 있다. 문학에서도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점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해가 쉽지 않았었다. 숲에 들어가 나무만 바라보고 숲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책을 다시 훑어라도 보고 싶다. 그때 내가 무엇을 이해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서.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걷기 예찬
도보여행의 개척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제주도 올레길을 찾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2. 11. 3-4일자 기사)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한 그의 나이는 두 달 후면 75세.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걷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걷기를 좋아하고 제주 올레길도 이미 2코스 걸었다. 시간만 허락하면 동네길 걷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울 도심 걷기, 산길 걷기, 그리고 언젠가는 한비야 씨처럼 한국의 곳곳을 한바퀴 걸어 보고 싶은 희망도 갖고 있다.
올리비에 씨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건 은퇴 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있던 그는 걷기를 시작했다. 산티에고를 걷고, 실크로드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다. 다음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을 걸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인 것은 그가 '쇠이유(Seuil 문턱)'라는 협회를 만들어 비행소년들의 재활을 돕는다는 사실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km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 준다."
이 말을 들으며 마음이 찡해졌다. 공부에 치여, 성적에 밀려 자존감이 없는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머리를 스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긴 걷기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걷기를 통해 마음과 몸이 치유되고, 온전히 자기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걷기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올리비에 씨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한 그의 나이는 두 달 후면 75세.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걷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걷기를 좋아하고 제주 올레길도 이미 2코스 걸었다. 시간만 허락하면 동네길 걷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울 도심 걷기, 산길 걷기, 그리고 언젠가는 한비야 씨처럼 한국의 곳곳을 한바퀴 걸어 보고 싶은 희망도 갖고 있다.
올리비에 씨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건 은퇴 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있던 그는 걷기를 시작했다. 산티에고를 걷고, 실크로드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다. 다음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을 걸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인 것은 그가 '쇠이유(Seuil 문턱)'라는 협회를 만들어 비행소년들의 재활을 돕는다는 사실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km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km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 준다."
이 말을 들으며 마음이 찡해졌다. 공부에 치여, 성적에 밀려 자존감이 없는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머리를 스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긴 걷기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걷기를 통해 마음과 몸이 치유되고, 온전히 자기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걷기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올리비에 씨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한국 고전 번역
한류가 대중 문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면 이제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세계에 소개하고 공유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 사상과 역사를 소개하는 지난한 작업의 선두에 서 있는 최병헌 교수는 2003년 임진왜란의 원인과 국난 극복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한 유성룡(1542-1607)의 <징비록>을 번역했고 (The Book of Corrections), 2010년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출판했다 (영문제목은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Manual for All Administrators). 이 책들은 미국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교수는 현재 <태조실록>을 번역 중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1월 3-4일자)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1차적으로 <태조실록>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자(漢字)를 하나 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삭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최교수는 번역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로서 얻게되는 기쁨을 밭을 가는 농부의 작업에 비유한다. 한영번역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고전 번역은 그 어려움이 몇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사실 영문학자이다.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문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영문학을 공부한 후 이제 한국의 문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국어 교육의 허점을 꼬집는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그 뿌리 없음과 공허함에 회의적이 되어 다른 길을 밟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학문하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목적'을 안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끌어주는 '깨인' 멘토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하지만 그래도 공부해서 버릴 건 없었던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올해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전은 우리 한국인이 먼저 읽어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과제는 즐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최교수는 현재 <태조실록>을 번역 중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1월 3-4일자)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1차적으로 <태조실록>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자(漢字)를 하나 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삭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최교수는 번역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로서 얻게되는 기쁨을 밭을 가는 농부의 작업에 비유한다. 한영번역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고전 번역은 그 어려움이 몇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사실 영문학자이다.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그는 한국문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영문학을 공부한 후 이제 한국의 문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국어 교육의 허점을 꼬집는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그 뿌리 없음과 공허함에 회의적이 되어 다른 길을 밟아온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학문하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목적'을 안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끌어주는 '깨인' 멘토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하지만 그래도 공부해서 버릴 건 없었던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올해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전은 우리 한국인이 먼저 읽어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 이 과제는 즐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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