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0일 화요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학

<밤이 선생이다>를 낸 황현산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한겨레 신문에 실렸다(8월20일자). 몇 주 전에 이 책을 사놓고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이전에 황현산 교수의 칼럼을 신문에서 가끔 보면서 그때마다 깨달음, 머리를 치는 혹은 가슴을 때리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인터뷰에서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밤은 선생이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밤의 신분을 말해 준다면, '이'라는 주격조사는 전혀 다른 늬앙스를 지닌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밤만이 선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이러한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전공한 불문학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고려대 불문학 교수로 있다가 2010년에 은퇴한 그는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해서 관련된 책과 번역서를 많이 냈다. 이 전공 영역은 어쩌면 '밤'의 상징성과 관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이 문예사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문학화했다면 말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런데 우리는 그 다른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으로써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함이 상징주의의 까다로움이다. 감각이 실제로는 그 다른 세계 자체라는 것이 상징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결합시켜서 그것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게 초현실주의다."

그의 설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들 문학사조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의 세계는 어쩌면 밤의 세계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미학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미학적이든 윤리적이든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정하고 환각으로서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바로 시다. 그런데 그 환각은 환각으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천명령이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찬란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것이 물질과 현실 속에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문인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란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명상과 수행

일주일간 여름 피서를 다녀왔다. 외지의 조용한 마을에서 일상에서 멀어진 생활을 하면서도, 인터넷이 가능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유튜브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 시리즈를 몇차례 봤다. 그곳은 중생의 다양한 고민이 스님의 지혜로운 답을 얻는 수양처였다. 스님의 답은 삶을 꿰뚫고, 상황을 통찰하는 지혜로운 언사였다. 무엇보다 실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했고, 많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지혜를 얻었다. 많은 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갈등과 걱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토요일 한겨레 신문에서 법인 스님은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라고 쓰셨다. 명상이 "번거로운 세속 잡사를 벗어나 잠시의 안온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상이란 무엇보다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잊고 망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생겨나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왜곡하고, 그 왜곡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

법인 스님의 칼럼은 좀 더 정치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반사 역시 결국 명상수행을 통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수행이 따라줘야 함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