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평등의 역설

알렉시스 드 토크빌 Wikipedia

알렉산더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열린책들, 2006, 김인순 역)을 읽었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제목에 끌렸고, 가까운 구립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빌려와 읽은 책이다. 다행이도 책의 내용은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

잘나가던 언론인이었던 저자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직장을 잃는다. 이제껏 누려오던 풍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그는 '독일인 답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풍요로움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 그것이 우릴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묻고, 그게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우아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종횡하고 지금의 독일사회를 분석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언급하면서 토크빌을 인용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프랑스 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책을 쓴 걸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평등한 사회가 인간에게 이롭기만 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건, 이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최고를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있어서 제약이 따랐고 따라서 그 안에 안주하고 그 안에서 만족을 느꼈을 텐데 이제 모두가 능력과 상관 없이 최고를 지향하기 때문에 불행은 시작된다는 식이다.

토크빌의 글을 인용해 보자.

"출생과 소유의 모든 특권이 폐지되고 누구나 모든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면 (...) 사람들은 마음 놓고 무한히 야심을 펼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이 위대한 것을 이루라는 소명을 타고났다고 즐겨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날마다 경험을 통해 수정되는 잘못된 생각이다. (...) 불평등이 일반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인 경우에, 극심한 불평등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평등한 경우에는, 아주 미미한 차이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이것은 민주주의의 주민들이 풍요 한가운데서 기이하게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 나는 부자들이 누리는 것을 희망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 가난한 시민을 미국에서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위의 책 189쪽에서 재인용)

토크빌의 생각을 읽으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아이들의 재능과 흥미는 뒷전으로 하고 그저 남들을 좇아 명문대를 지향하는, 그래서 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부모들,
진정 평등한 사회는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삶을 누리며 똑같이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마암분교 아이들

Copyright 2011, SAH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마암분교 아이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임실군 마암면에 있는 시골 학교다.

작가는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아이들과 친해졌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몇 명 안되는 작은 분교의 아이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공부하고, 노는지.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을 끌어안아보면,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261쪽)


아이들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도회 사람들의 문제인 것 처럼 보인다. 그냥 크도록 놔두지 못하고 재촉하고, 이끌고, 통제하고, 부모의 불안함 마음이 애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하지만 애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물론 부모는 안전한 테두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언제라도 의존할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 그래야 애들은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다. 애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 만큼 불안한 존재가 아니다.

2011년 11월 7일 월요일

제주 올레

Copyright 2011, SAH


10월 말에 친구랑 2박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이틀간 7코스와 10코스를 매번 7시간 이상 걸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과 시원한 바람 속에 다리는 뻣뻣해지고 발가락은 아팠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깊이와 높이에 대해, 내가 지나온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길은 미래로 열려 있었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서도 자신을 찾아나선 내가 안쓰럽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삶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종점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린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겠지. 내가 길을 제대로 들어섰는지, 조금 쉬어가야 할지, 누구에게 말을 걸지, 위험한 길은 피해가야 할지, 모험을 감행해야 할지. . .

여행 중에 내 마음 속에 찍어 놓은 풍광들이 한동안 산소처럼 내 삶에 활력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