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190)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저런 행복론에 관한 책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가끔 행복한 순간에 삶의 충일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의 행복을 음미하는 것과 행복을 목적으로 삼아 그것을 좇아 가는 건 다른 얘기다.

재일 교포 강상중 교수의 <살아야 하는 이유>는 행복에 대한 일반적 생각을 뒤집어 버린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단지 결과일 뿐이라고. 삶이 던지는 물음에 응답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행복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생의 물음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들을 잃었던 충격과 슬픔, 지진과 쓰나미, 원전의 파괴로 인한 수 많은 죽음과 황폐화를 목격하면서 우리의 삶이 '비상사태'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개인적 사회적 삶의 위기를 맞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썼고, 그것이 바로 그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고민하는 힘. 속편>이라고 한다. 2008년에 번역 출간된 <고민하는 힘>의 속편으로 나온 책인데 한국어 제목으론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일본어 판에 없는 한국어 서문에서 저자가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쓴 걸 보고 출판사에서 제목을 <살아야 하는 이유>로 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 근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오스트리아의 정신신경과 의사이자 유대인으로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토르 프랑클의 고민과 사유를 통해 21세기 현대의 삶을 조명한다. 근대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문제인 돈, 사랑, 가족, 자아의 돌출, 세계에 대한 절망은 여전히 우리의 문제로 남아 있고, 이를 분석하고 가시화 하면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 아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도'이다. 저자는 인간의 가치가 '창조', '경험', 그리고 '태도'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태도'야 말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라고 말한다. '태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프랑클이 든 예를 인용한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회진 때 의사가 죽기 몇 시간 전에 통증을 완화해 주는 모르핀을 주사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알고 그날 밤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환자는 프랑클에게 '지금 그 주사를 놓아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저 때문에 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프랑클은 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할 데 없이 인간다운 업적'이라며 칭송했습니다."(176)

'태도'는 죽기 바로 전에도 바꿀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는, 그래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쉽지 않지만 '거듭나기'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쩌면 행복한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