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일 수요일

묵경

요즘 독서 모임에서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을 시도하는 이 책을 통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서 중국 고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중이다.

전국시대 사상가 중 한 명인 묵자의 사상을 담은 책 <묵자>는 모두 5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중 '경' 상,하와 '경설' 상,하, '대취', '소취' 6편을 가리키는 <묵경>을 한국의 한 연구자가 '주해'를 해서 내놓았다.(한겨레 2012.10.3)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염정삼 연구교수가 묵자의 사상을 주해 작업을 통해 1,2권으로 풀어냈다. 이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고전을 연구 소개하는 방법이 세 가지라는 사실이다.

텍스트가 이어져온 과정을 파고드는 '주해', 텍스트의 내용을 풀이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는 '번역 해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데 텍스트를 활용하는 '재해석'이 그것이다.

묵가 사상은 유가 사상이 중국 문명의 중심축이 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청대 고증학의 발달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청대 학자 필원이 송대 판본을 계승한 '도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그동안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던 <묵경>의 순서를 바로 잡았고 이 작업을 통해 '정본'이라 할 만한 <묵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뒤 이어 청대 말기의 학자 손이양은 <묵자간고>를 통해 이전까지 <묵경>과 관련해 이뤄진 모든 논의와 연구를 망라했다고 한다.

염 교수는 손이양의 작업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그의 주해 작업은 우리 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라고 한다. 고전의 다양한 판본을 수집해 비교하고 여러 판본들의 계열과 관계망을 파악하는 '텍스트 크리틱'(비평)이 1차적이고 핵심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2차적으로는 텍스트가 시대별, 연구자별로 어떻게 풀이되어 있는지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다.

1920년대에 후스(호적), 량치차오(양계초), 등의 학자가 <묵경>에 천착했고, <묵경>은 논리를 바탕에 두고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중국 고대의 과학적 전통을 재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한다.

다음달 모임에서 <묵자>를 다루게 되는데 신영복 선생의 '재해석'적 방법이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물론 <묵경>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인식의 한계가 있겠다. 그래서 고전의 길은 길고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