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릴케의 편지와 한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편집한 <릴케의 편지>(안문영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8)를 우연히 도서관에서 손에 넣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20세기 독일 시인인 그의 작품을 대학 시절 조금 접한 적이 있었지만,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는 어딘지 신비롭고 어려웠다. 하지만 시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따뜻한 인간미와 그가 추구한 예술적 삶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시인을 만나고 거의 30년이 지난 나이에 그가 젊은이에게 주는 조언이 내 마음에 강하게 와 닿는 건 왜일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외부의 평가에 궁금해 하는 젊은 시인에게 그는 이렇게 충고한다.
"당신은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도 당신을 충고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말입니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령하는 스 근거를 탐구하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글쓰기가 좌절되었을 때 과연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이것이 중요합니다. 깊은 밤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 깊은 답을 찾아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당신이 그 심각한 질문을 강력하고 단순하게 '나는 써야만 한다'라는 말로 응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을 그 필연성에 따라 세우십시오. 당신의 삶은 아주 하찮고 무심한 순간까지도 이 충동의 표시와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에 다가가십시오. 그러고는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마치 최초의 인간처럼 말해보십시오." (위의 책 33쪽)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필연성에 따라 삶을 살아가라는 말, 인생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릴케는 독자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내면의 고독"을 통해 인간은 신의 영역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하지만 고독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려운 것이야 말로 우리가 그것을 행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덧붙인다.
고독은 어렵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독을 다른 것과 바꾸고 싶은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그 어떤 시시하고 값싼 어울림, 또는 아무하고나 가까운 사람, 사귈 가치도 없는 사람과 그저 조금이라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허상과 바꾸고 싶은 것이지요. . . .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에 고독이 성장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성장은 소년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될 때처럼 슬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고독, 위대한 내면의 고독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안 만나기 - 거기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중요하고 커 보이는 일들에 얽혀서 돌아다니느라 매우 바쁜 것처럼 보였고, 그런 어른들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외로웠듯이, 그렇게 외로워야 합니다." (63쪽)
이제야 말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릴케가 말한 고독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걸까.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롭게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내딛은 여정에 그의 말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