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8일 월요일

지혜롭게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언제부턴가 나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불혹을 훌쩍 뛰어 넘어 지천명의 나이 직전에 다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같다.

한겨레 신문의 칼럼니스트 김정운은 오늘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가 제목으로 내세운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원래 독일어책 Heute kommt Johnson nicht('오늘 존슨은 오지 않는다')의 한국어 변역 제목이다. 책 내용은 아주 한가로운 노인의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에 관한 이야기라고 적고 있다.

김정은은 또한 제임스 페너베이커 미국 심리학 교수의 실험을 인용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표현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보다 '우리'가 더 사용되고 시간과 관련된 단어들은 줄어든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동사의 시제가 나이가 들수록 미래형이 많다는 점이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과거형을 많이 사용하고 중년은 현재형, 노인은 미래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미래형 단어를 많이 쓴다는 건 뭘 의미할까? 미래를 생각한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시간의 범위가 확장됨을 뜻할 테니까 아마도 시간이 많아짐을 뜻하는 것 같다. 페너베이커 교수는 지혜롭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시간이 아주 많아지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많다는 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그럴 시간이 없을 테고, 그만큼 내면적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가만히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내면의 시간이다. 이 내면의 시간을 많이 갖고, 그것을 외연으로 확장한다면, 어쩌면 지혜롭게 나이가 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