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7일 화요일

7가지 감정

유교 사상에서 인간의 감정은 7가지로 구별된다. '칠정'이 그것인데 <예기> '예운' 편에 이렇게 나와 있다.

"무엇을 인간의 정이라고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喜怒愛懼哀惡欲)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다."

기쁨, 분노, 사랑, 두려움, 슬픔, 싫어함, 욕구가 칠정이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하며, 발동해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며, 화는 천하의 보편적인 길이다."

사단칠정에서 사단은 본성이 나타난 것으로 순수하게 선한 정이고, 칠정은 아직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정감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칠정이 발동해 객관적인 상황에 맞으면 선이고, 어긋나면 악이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위의 네 가지, 일곱 가지 이상으로 복잡미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고통, 억울함, 서운함, 등 좀 더 세부적인 감정들이 즐비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도 있고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도 존재한다.

사실 어찌보면 인간의 삶은 많은 부분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 어떻게 잘 표현되고 조절되고 분출되느냐에 따라 사는 게 순탄할 수도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교에서는 감정이 발동했을 때 그것이 적절한 경우에는 그것이 조화롭다는 의미에서 和 라고 하면서 선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상황에 맞게 감정이 표출되면 적절하고 자신과 세계와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식이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웃는 것은 이 조화가 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악이 된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한 번 관찰해 보고 싶다.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 그래서 내 정신 건강에 좋은 건지.

요즘은 '감정 코칭'이란 말을 많이 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라는 의미로 특히 부모교육에서도 강조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아이를 대하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감정이 앞서면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큰소리도 대들 때, 그저 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정말 바람직할까? 엄마도 감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치유하는 책 읽기

마음이 산란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불안감이 내 영혼을 잠식할 듯했다. 신경은 끝없이 날카로워지고, 공격적이 되면서 마음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침대 옆 탁자에 읽다가 놔둔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북섬 2007)가 눈에 들어왔고 다시 손에 잡았다. 그리고 위안을 얻었다.

저자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

"내게는 오직 세 가지 적이 있습니다. 가장 손쉬운 적은 대영제국입니다. 두 번째 적은 인도 국민으로, 이는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만만찮은 적은 간디라는 남자입니다. 내게 그는 참으로 벅찬 상대입니다." (176)

"내 정신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내 편협한 시각과 헛된 기대와 실체 없는 두려움입니다."

이 말을 읽으면서 내 자신 속의 실체 없는 두려움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치유되었다.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네 가지

요즘 개콘에서 '네 가지' 코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기 없고, 촌놈이고, 키 작고, 뚱뚱한 네 남자가 나와 자신의 '단점' 때문에 생기는 오해에 대한 불만과 해명을 늘어 놓고 있다.

퇴계 이황의 철학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최영진의 <퇴계 이황>(살림 2007)에서 '사단 칠정'에 대해 읽었다. 퇴계가 자신보다 26살 어린 기대승과 8년에 걸쳐 토론을 하며 한국적 성리학의 기초를 닦게 된 유명한 '사단 칠정론'의 얘기다.

여기서 '사단'이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제시한 것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바로 그것이다.

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갖고 있다. (-)
지금 어떤 사람이 어린애가 막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나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이 사실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인간이 사단(四端)(네 가지 단서)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이 사지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이 있는데 스스로 도덕적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이며, 그 군주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이 네 가지, 사단을 갖고 태어난다는 얘기다. 사단이란 인의예지라는 본성이 발현된 정감이다. 타자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인 '측은지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인 '수오지심',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인 '시비지심', 이렇게 네 가지다.

유교에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천착을 한 이유는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각 개인이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에 대해 배우면서,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이 네 가지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도덕적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물론 성인들도 자신 속에 내재한 이 네 가지 본성을 제대로 발현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수양해야 하는 게 더 필요한지도.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는 거니까.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겸재의 인왕산 수성동 계곡

진경 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이 인왕산과 북악산에 걸친 장동 일대의 경승지 8곳을 그려 "장동팔경첩"으로 남겼었다. 그 중 인왕산 수성동 계곡을 그린 작품 속의 모습을 서울시가 복구 재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림 속에 나오는 돌다리도 그대로 남아 있고, 주위에 전통 정자 '사모정'도 설치하고 이곳을 기념물 제 31 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인왕제색도"를 미술사 강의에서 보고 난후, 작년에 서울 성곽을 한 바퀴 도는 순성놀이에 참여하면서 그림 속의 바위산을  직접 눈으로 봤었다. 그리고 그 장엄한 풍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언제 시간을 내서 수성동 계곡에도 가봐야지.
요즘은 자연이 좋고, 자연을 사랑했던 조선의 선비와 예인들이 좋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다.